가뜩이나 충무로 영화계가 남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여배우로서 맥빠지고 짜증이 날법한데, 응원은 못해줄망정 가슴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만행을 또 한 번 겪게 돼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영화 ‘흥부’의 연출자 조근현 감독의 여배우관(觀), 더 나아가 그동안 가져왔던 그의 여성관이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조근현 감독은 지난해 12월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으면서 뮤비에 출연할 신인 여배우들을 직접 선발하는 미팅을 가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 감독이 기존의 여배우들을 비하했고 20대 A씨에게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언사로 성희롱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을 낳고 있다. 당시 오디션을 진행하며 만난 여러 명의 지원자들에게 조 감독은 나름 현실적 조언이랍시고 성적인 멘트를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SNS에 직접 밝힌 글을 보면 조근현 감독이 “여배우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를 준비하는 애들은 널리고 널렸고 다 거기서 거기다.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며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거 같아? 영화라는 건 평생 기록되는 거야. 조연은 아무도 기억 안 해”라고 말한 것으로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조감독은 현재 해외에 체류중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한 길은 없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각각 “오늘 말고 다음에 또 만나자. 술이 들어가야 사람이 좀 더 솔직해진다. 너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조 감독이 뒤늦게 사과 문자를 보내긴 했지만 정확히 어느 지원자인지 떠오르지 않아 전원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일상적으로 성희롱을 일삼아왔다는 방증이다.
여배우를 향한 조 감독의 인식에 적잖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여배우들이 자신의 외모, 몸매만 믿고 캐릭터 변신은 시도하지 않은 채 노력 없이 버티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고 있긴 하다. 연기력보다 비주얼로 승부하려는 여자 배우들이 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좁힌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 감독의 생각처럼 여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하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이 말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온 연기자들의 인격을 말살하는 욕설이자, 폭력이다. 성폭력은 이제 근절해야 할 악으로 규정됐다./purpli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