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1월 중순의 완도. 김재현(31·SK)은 동인천중학교 야구부와 연이 닿아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힘이 나지 않았다. 1군 주전 경쟁에서는 밀린 상황이었고, 앞으로의 거취도 불투명했다. 김재현은 “야구가 재밌지 않았다. 1군에 올라갔는데 오히려 적응이 안 되더라”고 털어놨다.
김재현은 2016년 선수 생활의 전기를 만드는 듯 했다.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100경기에 나가 타율 3할2푼1리, 13도루를 기록했다. 비록 규정타석에는 많이 모자랐지만, 그간 타격에서는 별다른 공헌을 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2017년에 대한 자신의 기대치는 더 높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중장거리형 타자를 선호하는 트레이 힐만 감독의 눈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2군 생활이 길어졌고, 점점 지쳐갔다. 전형적인 2군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재현은 지난해 1군 14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다. 안타는 하나도 없었다. 2군에서는 68경기에서 타율 3할3푼9리를 기록하는 등 활약했으나 좀처럼 1군에 자리는 없었다. 김재현은 “처음에는 많이 처지고 그랬다. 야구가 잘 안 되고 그러더라”고 떠올렸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던 무렵, 김재현을 위해 완도까지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있었다. 평소 김재현을 물심양면으로 챙겨준 한 형님이었다.
김재현은 “친한 형님이 하나 계셨는데 엄청 생각해주신다. 고기도 많이 사주시고, 용품 지원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그런데 김재현을 만난 다음날 운명을 달리 했다. 김재현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김재현은 “내가 경기를 하는 것을 보러 오는 게 낙이라고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내가 1군에 못 뛰면서 한 번밖에 못 오셨다고 하더라”고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1군에 올라가지 못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김재현은 “많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런 마음이 조금씩 없어지더라”고 했다. 돌아가신 형님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했다. 고등학교, 중학교 야구부원들과 함께 훈련을 하며 초심을 되찾은 것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은 야구를 진심으로 재밌어하고 있었다. 김재현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마지막이라는 절박함과 같은 진부한 표현으로는 현재 김재현의 상태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그 또한 초월했을지 모른다. 김재현은 “사실 이제 유니폼을 입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매 순간 다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기회가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내 스스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가고시마 2군 캠프에서 한 시즌을 시작했지만 캠프 장소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상당 부분 사라졌고, 독하게 달려들고 있다. 김무관 SK 퓨처스팀(2군) 감독도 김재현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성과는 만족스럽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는 당겨쳐 만드는 안타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방향을 조절하고 타구질이 좋아졌다”면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도루든 수비든 기량이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현은 “어차피 나는 넘어가는 타구가 얼마 안 나온다. 50미터만 날린다는 생각이다. 공을 띄우지 않기 위해 노력 중”면서 “야구를 잘하고 싶다. 나이를 먹어서 체력이 안 되나 테스트를 해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번에 체력테스트와 베이스러닝 테스트에서 모두 상위권이었다. 김 감독님께서 기운을 내게끔 다독여주시고 잘 챙겨주셨다. 이제는 마음이 잡혔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하늘에서 김재현을 지켜볼 형님을 위해서라도, 김재현은 반드시 야구를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절박한 동력이다.
2018년 프리뷰
1군 캠프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김재현의 현재 위치를 냉정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낙담은 이르다. 부상이나 주축 선수들의 부진과 같은 돌발변수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김재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는 각오다. 기본적으로 수비와 주루 플레이에서는 리그 정상급 기량을 인정받는 김재현이다. 1군 백업은 여러 가지를 두루 잘하는 선수보다는, 몇몇 부분에서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대목이 있다. 당장 외야에 결원이 생기면 콜업 1순위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노릴 입지확장은 김재현 자신의 몫이다. 팀에서는 여전히 김재현이 가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