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니퍼트(37·kt)가 마법사 군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니퍼트는 지난겨울 화제에 올랐다. 7년간 몸담았던 두산과 재계약이 불발됐고, 팀을 구하지 못해 은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kt가 손을 내밀었고, 선수 생활 황혼을 맞이하게 됐다.
니퍼트는 아직 불펜피칭을 시작하지 않았다. 몇몇 선수들은 대여섯 번 불펜피칭한 시점. '에이스' 역할을 기대하는 코칭스태프로서는 초조할 법한 상황이다.
그러나 니퍼트는 "매년 해왔던 루틴이다. 20일쯤 첫 불펜 피칭을 생각 중이다. 내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전 소속팀 두산이 최근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기 때문에 니퍼트로서는 이닝 부담이 맣은 상황이다. "확실히 11월까지 야구를 한 후유증이 있긴 하다. 다른 선수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하지만 내 초점은 오직 개막전에 맞춰져있다. 난 17년 동안 프로 선수로 뛰었다. 자신 있다".
니퍼트는 스프링캠프 출국 직전 인터뷰에서 "비행기에서부터 선수들과 친해질 생각이다. 새 팀에서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하는 만큼 차이는 있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주 넘게 지났다. 니퍼트는 이미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두산에서 보였던 모습과 닮아있다. 니퍼트는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 사람과 얘기하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이 숱하게 달려들어 신기했다"고 밝혔다.
두산 시절부터 멘토를 자처했던 니퍼트다. 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수년째 무엇을 전달해왔을까. 니퍼트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전제가 먼저다. 그저 선수들이 잘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건 선수의 몫이다"라며 "선수마다 특성이 다른 만큼 고민도 다르다. 내 경험에 비춰서 '이런 사례가 있었다'고 전해줄 뿐이다. 개개인의 실력이 향상돼야 팀이 좋아진다"라고 강조했다.
니퍼트는 두산 데뷔 시즌인 2011년 페르난도 니에베를 시작으로 스캇 프록터, 개릿 올슨, 데릭 핸킨스, 크리스 볼스테드, 유네스키 마야, 앤서니 스와잭, 마이클 보우덴 등과 호흡을 맞춰왔다. 무려 여덟 명의 짝궁. 올해는 kt에서 라이언 피어밴드와 뛴다. 피어밴드는 니퍼트와 닮은 부분이 많다. 지난해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으며, 젊은 투수들이 많은 kt의 멘토 역할을 맡았다. 이제 에이스와 멘토의 짐을 니퍼트가 나란히 지게 된 셈이다.
피어밴드는 "니퍼트와 지난해 올스타전 때 한 팀에서 뛰었다. 원래부터 니퍼트를 닮고 싶었다. 나도 제2의 니퍼트가 돼 KBO리그에서 오래 뛰고 싶다"라고 기대를 보냈다. 니퍼트는 "난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다"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피어밴드가 어떤 성향의 선수일지 잘 알고 있다. 시너지를 낼 부분이 많다. 그와 더불어 후배들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진욱 감독은 올 시즌 목표로 '5할 승률'을 내걸었다.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팀으로서는 다소 벅찰 수 있는 목표다. 아무리 니퍼트와 황재균이 가세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영건 투수들의 성장 없이는 쉽지 않다. 여전히 kt는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니퍼트의 생각은 어떨까. 니퍼트는 "kt는 3년 동안 꼴찌를 했다. 올해도 하위권으로 평가받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1등도, 꼴찌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동료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올 시즌 끝을 벌써부터 생각하지 말자. 어제도, 내일도 필요 없다. 그저 한 경기 한 경기씩, 오늘만 생각하자.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7년간 몸담았던 두산과 재계약에 실패하며 여러 논란을 낳았던 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잊었다. 니퍼트는 오로지 kt의 탈꼴찌 너머만을 바라보고 있다. /ing@osen.co.kr
[사진] 투산(미 애리조나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