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선수단이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승부의 세계에 빠졌다.
설 연휴도 어느덧 막바지로 향해간다. 하지만 하루 늦은 미국의 시계로는 17일(한국시간)이 설 당일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진행 중인 kt 선수단은 이날 실내에서 간단히 오전 훈련만 진행했다.
선수단은 점심식사로 떡국을 먹었다. 먼발치서라도 명절 분위기 느끼길 바라는 김진욱 감독의 바람이었다. 한국에서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조미료 풍미 대신 엄마의 손맛이 느껴졌다. 이 자리를 빌어 요리해주시는 이모님들 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떡국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 설 행사인 윷놀이에 돌입했다. 투수조, 야수조, 코칭스태프조, 프런트조로 나뉘어 4강전을 펼쳤다. 온갖 야유와 방해공작이 난무하는 승부가 이어졌다. 투수조와 코칭스태프조의 맞대결에선 투수조가 승리했고, 반대쪽 매치업에서는 야수조가 이겼다. 결승은 운명의 장난처럼 투수조와 야수조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우승팀은 야수조. 마지막에 '개'를 던지며 끝내기를 만든 '주장' 박경수는 아이처럼 환호했다. 승리팀에게는 상금 1000 달러, 준우승 팀에게는 500 달러가 돌아갔다.
그 뒤로 장기자랑 시간도 이어졌다. 신인 최건은 베테랑 내야수 윤석민의 성대모사로 장내에 웃음폭탄을 던졌다. 최건이 얇은 목소리로 "애기야, 이리로 좀 와봐라"라고 따라하자 윤석민이 발끈해 "내가 언제 그랬나"라며 고성을 질렀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황재균도 윤석민을 제법 비슷하게 따라했다. 윤석민은 "내 성대모사 하는 걸 처음 들었다"라며 어이없어 했다.
군 전역 외야수 송민섭은 '끼쟁이'라는 별명답게 정명원 투수코치 성대모사를 했다. 송민섭은 정 코치의 농담을 그대로 따라했다. 송민섭과 최건은 분위기를 띄웠다는 이유로 자체 MVP에 선정, 별도의 상금을 받았다. 신인투수 김민도 이문세의 휘파람을 열창했지만 분위기가 처진다는 이유로 큰 환호를 못 받았다.
황재균은 국내 팬들에게 설 인사를 전해달라는 요청에 "윷놀이를 추천한다. 그렇게나마 선수들이 펼치는 승부의 세계에 들어온다면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전 딸을 얻은 이해창 역시 밝은 분위기를 즐겼다. 공교롭게도 이해창의 둘째 딸 이름이 설이다. 이해창은 "설 연휴가 되니 설이가 더 보고 싶다"며 자비 없이 라임을 폭격했다.
김진욱 감독은 "여러 분들이 윷놀이를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각자의 팀이 이기고자 집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제 시즌이 시작하면 그 모습을 고스란히 경기장에서 보여주길 바란다"는 기대를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행사를 통해 선수들이 훈련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고, 재충전의 시간이 됐기를 기대한다"며, "남은 캠프 기간 동안, 부상 없이 ‘신나는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kt는 지난해 최하위에 처져있을 때도 분위기만큼은 좋았다. 선수들도 입을 모아 "꼴찌가 이렇게 웃고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 이제 김진욱 감독의 표현처럼 그 분위기를 그라운드 위에서 보일 순간이다. /ing@osen.co.kr
[사진] 투산(미 애리조나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