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0세 이승훈의 마지막 랩타임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금메달 리스트보다 빨랐다.
이승훈은 15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발경기장서 열린 대회 빙속 남자 10000m서 12분55초54로 4위를 차지했다. 3위 니콜라 투몰레로(이탈리아)에 1초22 뒤지며 아쉽게 동메달을 놓쳤지만 이승훈은 8년 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당시 기록한 12분58초55를 3초01 앞당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승훈은 2011년 솔트레이크 월드컵서 자신이 세운 한국 신기록(12분57초27)도 갈아치웠다.
이승훈은 이날 3조 아웃코스서 모리츠 가이스라이터(독일)와 레이스를 펼쳤다. 이승훈은 초반에 힘을 아끼다 레이스 중후반부터 스퍼트를 올리는 전략을 세웠다. 첫 바퀴서 35초32의 랩타임을 기록한 이승훈은 마지막 바퀴서 29초74의 랩타임을 찍는 뒷심을 발휘했다.
이승훈은 앞서 부종목인 5000m에서 5위를 차지하며 10000m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승훈에게 10000m는 5000m와 마찬가지로 팀추월과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는 매스스타트의 메달 사냥을 위한 징검다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베테랑' 이승훈은 5000m에서 선전한 데 이어 8년 전 밴쿠버서 자신에게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던 10000m서도 괴력의 질주를 이어가며 희망을 안겼다.
간발의 차로 메달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이승훈은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놀라운 레이스를 펼쳤다. 이승훈의 첫 400m 랩타임은 35초32였다. 이후 5600m 지점까지 31초대의 랩타임을 유지한 이승훈은 6000m 지점서 처음으로 30초대의 랩타임에 진입했다.
이승훈은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괴력을 발휘했다. 7600m 지점서 30초22, 9200m 지점서 30초23의 랩타임을 기록한 이승훈은 마지막 400m서 29초74를 찍으며 자신이 보유한 10000m 한국 신기록을 7년 만에 경신했다.
이승훈이 마지막 400m에서 기록한 29초74는 세계랭킹 1위이자 이날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테드 얀 브뢰메(캐나다)의 가장 빠른 랩타임(29초81)보다도 좋은 기록이었다.
이승훈은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지치는 줄 모르고 달릴 수 있었다"면서 "마지막 10바퀴서 잘 버텨서 좋은 기록이 나왔다"고 비결을 전했다.
네덜란드 장거리 레전드 밥 데 용 코치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이승훈은 "너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특히 코너에서 힘을 빼지 말고 템포를 타고 마지막 10바퀴를 잘 마무리하자는 말이 도움이 됐다"고 공을 돌렸다.
부종목인 5000m와 10000m서 컨디션을 최고치로 끌어 올린 이승훈은 오는 18일과 21일 정재원(18), 김민석(20) 등 후배들과 함께 팀추월에 출전한다. 24일엔 금메달이 기대되는 매스스타트에 나선다.
'괴력의 남자' 이승훈의 질주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dolyng@osen.co.kr
[사진] 강릉=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