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악동'이었다. 에스밀 로저스(33·넥센)가 한화 시절 남긴 인상은 그랬다. 실력만큼은 인정받았지만 부정적 꼬리표가 따랐던 이유다. 유독 튀는 선수가 없이 차분한 넥센이 그를 품었다. 둘의 시너지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일단 캠프 첫 단추는 잘 꿰고 있다.
넥센은 2011년부터 팀과 함께 했던 외인 투수 앤디 밴헤켄과 지난 시즌 후 결별했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밴헤켄의 대체자 선택은 더욱 과감했다. 2015년과 2016년 한화에서 뛰었던 로저스가 그 대체자였다. 로저스는 2015년 대체 외인으로 한화에 합류, 10경기서 6승2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다. 10경기 중 완투가 4차례, 그 중 완봉이 3차례였을 만큼 괴물이었다.
그러나 로저스는 2016년 팔꿈치 통증으로 부진에 시달렸다.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과 마찰도 있었다. 팀 케미스트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결국 로저스는 2016시즌 도중 퇴출됐다.
로저스는 한국을 떠난 후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등판하며 여전한 구위를 선보였고, 넥센은 그를 영입했다. 구위나 몸 상태가 이상없다면 결국 관건은 로저스의 팀 적응에 달려있다.
사실 넥센은 창단 이래 줄곧 튀지 않는 팀 컬러를 유지했다. 국내 선수 중에도 마땅히 이슈나 소동을 일으키는 이가 없었다. 외인은 더욱 그랬다. 밴헤켄은 '넥센식 외인'의 기준을 제시했다. 션 오설리반처럼 기량이 현저히 부족한 이가 영문 모를 자신감을 부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튀지는 않았다. 그런 넥센에 악동 로저스가 나타난 셈이다.
염려가 따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로저스는 캠프 시작 일주일 만에 팀에 녹아들고 있다. 장정석 감독은 "그 부분(악동 이미지)에 대해서 신경 썼는데 웬걸, 사람 괜찮은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장 감독은 "팀에게 피해를 끼칠 선수는 아닌 것 같다.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고 있다. 차분한 선수가 많은데 오히려 로저스 덕분에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덧붙였다. 캠프 시작부터 로저스를 지켜본 넥센 관계자 역시 "분위기를 띄우면 띄웠지 깨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화와 넥센에서 모두 로저스 영입을 주도한 허승필 넥센 스카우트팀 대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로저스는 한화 시절, 어린 후배들 데리고 나가서 밥을 사주곤 했다. 김태균에게 배운 것이다. 2016년에는 여러 모로 마찰을 일으켰는데 부상이 원인이었다. 선수 생활하며 처음 입은 부상 속에서 무리가 겹치면서 멘탈이 완전히 나간 것이다. 어느 정도 관리만 더해진다면 돌발 행동할 선수는 아니다".
로저스는 아침 일찍 시작하는 워밍업부터 적극적이었다. 기합을 제대로 넣지 못하는 김하성에게 '보여주겠다'는 듯 가장 목청껏 소리 질렀다. 주위 고참들은 "로저스 기합이 가장 좋은 게 말이 되냐"며 껄껄 웃었다. 로저스는 다른 투수조 선수들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미 친분을 과시하는 단계다.
로저스는 "선수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먼저 다가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라며 "시애틀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었던 김선기가 통역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고 전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악동 로저스와 차분한 넥센의 동거가 시작됐다. 이 스토리의 결말은 올 시즌 넥센 성적의 키를 쥐고 있다. 첫 단추는 나쁘지 않다. /ing@osen.co.kr
[사진] 서프라이즈(미 애리조나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