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가 몇이냐?"
삼성 외야수 박한이(39)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첫 날이었던 지난 1일 훈련을 앞두고 팀 미팅 때 김한수 감독으로부터 이와 같은 물음을 받았다. 박한이는 "마흔입니다"라고 답하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다. "내가 벌써 마흔이 됐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지난 2001년 삼성에 데뷔한 박한이는 올해로 18년째 라이온즈맨으로 살고 있다. 리그에 그보다 나이 많은 선수는 1976년생 박정진(한화)·임창용(KIA) 둘뿐이다. 야수로 따지면 KBO리그 최고령이다. LG 박용택도 같은 1979년생이지만 4월생으로 1월생인 박한이보다 입단이 1년 늦었다. 지난해를 끝으로 이승엽이 은퇴했고, 삼성 팀 내에서도 최고참이다.
박한이는 지난해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68경기에서 타율 2할6푼3리 31안타 4홈런 14타점에 그쳤다. 16년 연속 이어온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도 끊겼다. 우리나이 불혹이지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새 시즌을 맞이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후배들과 함께 땀 흘리는 '야수 최고령' 박한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새 시즌 KBO리그 최고령 야수가 됐는데 어떻게 준비하나.
▲ 내가 최고령인가(웃음). 캠프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오키나와로 넘와 체력, 기술 훈련을 계속 해왔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르려면 몸을 잘 만들어야 한다. 기술보다는 그것에 집중하고 있다.
- 2001년 신인 때 캠프에 참가했지만 지금은 최고참이다.
▲ 처음 신인으로 들어왔을 때와 지금은 차이가 크다. 내가 신인이었을 적에는 스파르타식이었다면 지금은 자율훈련으로 보면 된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최고참이라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캠프 기간이 지루할 때는 어떤 말도 듣기 싫고 기분이 안 좋기 때문에 최고참으로서 후배들 분우기에 맞춰주려고 한다.
- 이승엽의 은퇴로 삼성 최고참이 된 부담이 클 듯하다.
▲ 장단점이 있다. 캠프 훈련 첫 날 미팅할 때 (김한수) 감독님께서 나이를 물어보셨다. 마흔이라고 했는데 조금은 서글픔을 느꼈다. 내가 벌써 마흔이 됐나 싶기도 하고, 아직 마흔 같지 않은데. 조금 서글펐다.
- 마흔이 되는 동안 얻은 것도 많지 않은가.
▲ 제일 좋은 건 경험이다. 지금까지 야구를 해오며 쌓은 경험이 있다. 젊은 선수들은 잘 모를 수 있는 부분을 알고 있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나이를 먹은 증거다. 후배들에게 처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 올해는 유력한 주전 지명타자 후보로 꼽힌다.
▲ 감독님께서 기대하신 만큼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외야 수비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다. 17~18년간 지명타자가 아니라 수비를 나간 선수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지명타자로 생각하시면 그에 맞춰 방망이를 더 잘 쳐야 한다.
- 지난해 17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에 실패했다.
▲ 많이 아쉽지만 홀가분하기도 하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기록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쉬움이 홀가분한 마음보다 크지만 이제 기록은 깨졌다.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지난겨울 베테랑 선수들에게 유독 한파가 몰아쳤다. 야수 최고령으로서 그 부분이 의식되지는 않나.
▲ 너무 보여주려고 하면 역으로 독이 되더라. 내가 하는 페이스에서 10% 정도만 오버하면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달려들면 오버 페이스가 된다. 내 마음은 100을 보여주고 싶지만, 100을 넘으면 오버 페이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조금씩 페이스를 올려가는 게 중요하다.
- 18년 삼성맨으로서 자부심이 클 것 같다.
▲ 야구를 하며 나만의 신조가 있다. 야구장에서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인 이상 방망이 잘 맞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 절대 느슨한 플레이는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신조다. 그래서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야구장 나가면 매 경기 하나라도 더 하려 한다. 팬 분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늘 그랬고, 앞으로도 부끄럽지 않게, 느슨한 모습은 보여드리지 않을 것이다. /waw@osen.co.kr
[사진] 오키나와=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