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다시금 '감독과 그 감독이 만든 영화는 별개로 봐야하는가'란 관객들의 오랜 질문을 상기시킨다. 감독의 명성이 성추문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를 이미 외국에서는 로만 폴란스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영원히 딸 성추행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우디 앨런과 적극적인 '미투' 운동 움직임으로 인해 범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현주 감독. 그리고 이들로 인해 얼룩진 작품들. 시네필들이 사랑했던 작품들이기에 더욱 마음 한 켠을 아프게 하는 영화들이다.
우디 앨런은 전세계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할 만 하다. 그가 만들어낸 영화 세계에는 세련된 블랙 유머 속 복잡한 인간 내면의 면면이 세밀하게 포착돼 있다. 정신분석적인 코미디의 향연 '애니 홀', 보는 이들을 꿈의 세계로 데려가는 '로마 위드 러브', 날카로운 인간성의 포착 '매치 포인트', 마법같은 사랑의 기적을 그린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등 전부 나열하기도 힘든 그의 필모그래피는 전세계 영화인들이 동경하는 것이다.
이런 우디 앨런에게 그의 사생활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양 딸인 딜런 팰로우의 "7세부터 우디 앨런으로부터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라는 폭로. 우디 앨런은 이는 사실이 아니며 어머니인 배우 미아 패로우가 딸을 세뇌시킨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 출연한 다수의 배우들도 등을 돌려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이끈 바다. 다만 과거 검찰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 여파로 인해 우디 앨런의 신작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은 개봉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팬들이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우디 앨런의 영화 속 그의 사생활을 연상시키는 비슷한 설정이나 관계가 나오면 관객들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현주 감독이 있다. 퀴어 영화 '연애담'으로 각종 영화 시상식의 신인감독상을 싹쓸이하며 충무로의 신예 스타 감독 탄생을 예고했지만 동성의 동료 영화인을 성폭행(유사 성행위)한 혐의로 유죄(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 교육 40시간) 판결을 받은 사실이 피해자의 '미투' 운동 참여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며 영화계와 대중에 충격을 안긴 바다.
'성폭행이 아닌 합의된 성관계'라는 그의 설명은 논란의 파장을 더 키웠고, 여론은 '가해자' 편이 아니었다. 현재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현주 감독의 영구 제명 절차를 검토하고 있으며, 여성영화인모임은 이현주 감독에게 수여했던 2017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박탈했다. 결국 이현주 감독은 스스로 영화계를 떠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에 이르렀다.
퀴어 영화이지만 그냥 '보통의 연애'를 진정성 있게 그려내며 성소수자를 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환경까지 디테일하게 녹여낸 '연애담'은 작은 영화들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었고 '소외된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란 선한 영향력마저 가졌던 바다.
하지만 이처럼 예뻤던 '연애담'은 이제 '성폭행 범의 영화이야기'란 오명을 안게 됐다. 영화를 통해 조심스럽게 성소수자인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시켰다는 이현주 감독. 영화는 감독의 작품일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 작업물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란 사실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자식처럼 남은 영화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nyc@osen.co.kr
[사진] 영화 스틸, 청룡영화상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