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최고 구속이 얼마나 나왔는지 알고 계시나요?”
지난해 2월. 오키나와 전지훈련에 참가한 서진용(26·SK)은 경기 후 자신의 구속을 궁금해 하는 일이 많았다. 등판이 마무리되면 전력분석원 및 프런트, 혹은 경기를 지켜본 취재기자들에게 이를 묻곤 했다. 팀을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로서 구속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서진용의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불안감을 ‘정상적으로 찍히는 구속’으로 숨겨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2015년 중반 팔꿈치 수술을 받은 서진용은 2016년 중반 복귀했다. 재활은 순조로웠다. 여전히 145㎞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고 있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2017년에는 비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코칭스태프의 결정도 결국 서진용이었다. 마무리로 생각했던 박희수의 구위가 오키나와까지 올라오지 않자 트레이 힐만 감독은 ‘서진용 마무리’ 카드를 꺼냈다. 언젠가는 이뤄질 일이었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아쉽게도 예상보다 더 빨리 실패를 맛봤다.
서진용은 지난 시즌 초반 “아직은 내 팔이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꿈치 수술 후 정상적인 감각을 찾기까지 2년은 걸린다는 것이 트레이닝 파트의 소견이었다. 여기에 쌓여가는 블론세이브에 마음도 지쳤다. 생전 받아본 적이 없는 비난에 평소 당당했던 서진용도 자꾸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서진용은 “생각보다 내가 너무 못했다. 그런 비난은 당연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당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직 젊다. 구단도 서진용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유력한 마무리 후보다. 140㎞ 중·후반, 최고 150㎞를 던지는 빠른 공은 익스텐션이 길어 타자들의 눈에는 체감속도가 더 빠르다. 여기에 빠른 공과 최고의 조합을 이루는 포크볼이 건재하다. 또한 꾸준히 연습했던 커터성 고속 슬라이더가 점점 손에 잡힌다. 지난해 후반기 1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서진용은 “더 직구같이 던지려고 생각을 하며 연습을 한다. 다 만들어서 시즌에 들어가야 한다”고 각오를 숨기지 않는다.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라 타자들이 빠른 공을 노리고 타석에 서는 경우가 많은데, 슬라이더로 파울만 유도해도 충분히 가치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 서진용은 꾸준함을 관건으로 내세웠다.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차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믿을 만한 불펜 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격차를 줄여야 한다.
한 해 실패를 맛보면서 마냥 잃지만은 않았다.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할 수는 있지만, 주위에서는 “서진용이 최악의 상황을 겪으며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서진용은 복합적인 심정이다. 서진용은 “작년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 부담이 되는 부분은 있다”고 했다. 스스로도 올해 성공해야 앞으로 팀 내 입지가 굳건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한 번 겪어봤으니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고 말을 이어나갔다. 2017년 초보다 더 나빠질 것은 없다는 생각의 표현이다.
지난해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서진용은 올해 준비 패턴을 바꿨다. 서진용은 지난해 체중을 불렸다. 서진용은 “투수들은 아무튼 살이 찌면 힘이 붙고 안 아프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몸이 둔해져 순발력이 떨어지더라. 그래서 올해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최대한 몸을 안 두껍게 만들었다. 체중도 감량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최고 구속을 던졌을 때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150㎞ 이상의 강속구 쇼를 기대할 수 있다.
SK는 2019년 대권 도전, 그리고 지속적으로 정상권에 있는 팀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징검다리가 될 2018년 성적이 아주 중요하다. 서진용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올해 좋은 활약을 해 도약한다면, SK는 최소 5년은 마무리 보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SK도 또 다른 고민을 하고 다른 답을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 SK의 구상이 서진용이라는 이름 석 자에 상당 부분 좌우될 것이다.
2018년 프리뷰
지난해 42경기에서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3.91이었다. 타고투저의 시대에 그렇게 높은 수치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큰 비난을 받은 것은 그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제 만 26세. 아직은 지난해의 실적보다 그 그릇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중간부터 천천히 키우는 게 맞다”는 신중론이 구단 내부에서도 대세지만, 구위 자체만 놓고 보면 여전히 올해도 가장 유력한 개막 마무리 후보다.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빠른 공의 낮은 제구, 포크볼의 일관성, 그리고 양념이 될 슬라이더의 완성도가 과제. 어쨌든 중간부터 시작하든, 다시 마무리로 시작하든 SK의 불펜투수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을 선수임은 분명해 보인다. 서진용은 “기분은 좋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칼을 갈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