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에 이어) 영화 ‘천화’(감독 민병국) 속 이일화가 낯선 것은 사실이다. 엄마로서 자식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여자로서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변신의 폭이 넓은 그녀를 너무 ‘어머니 캐릭터’라는 틀에 가둬둔 것만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굳이 모성애 강한 엄마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연기력이라면, 그 어떤 캐릭터도 마치 실존 인물처럼 현실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이일화는 3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천화’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저는 후배 정나온씨 때문에 우연히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작품 제안을 받았는데, 제게 시나리오를 한 번 봐달라는 부탁을 해서 읽었는데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고 감독님께 '윤정 캐릭터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귀찮은 일을 만나도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요양사 윤정(이일화 분). 치매에 걸린 문호가 백주대낮부터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볼썽사나운 짓을 하지만, 그녀는 다른 간호사들과 달리 화내거나 피하는 일 없이 문호에게 다가가 아이처럼 달래준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웃 주민들도 늘 화사한 미소로 반기는 그녀다.
윤정은 사랑에 대한 아픔과 일에 치여 하루를 술과 담배로 마무리 하는 반전의 소유자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바로 풀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해소하거나 혼자 집에서 삭이는 것이다. 담배 및 노출, 샤워 신(scene)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일화가 해당 장면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따랐을 터다.
이일화는 캐릭터에 대해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의논을 많이 했다. 제가 감독님에게 ‘어디까지 노출을 해야 하나?’ ‘목욕신은 어느 정도 노출이 되느냐’고 물었다. 근데 지금와서 그런 것들(노출 수위)을 걱정하며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면서 물론 제가 적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배우지만, 아이엄마라는 걱정이 앞섰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일화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노출, 담배씬과 같은 모습이 담긴)이런 시나리오를 받게 된다면 그땐 아주 즐겁게 하게 될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일화는 “평소 담배도 못 피우는데 연습을 많이 했다. 노출씬이나 담배씬, 양동근 씨와의 베드씬도 기혼인 양동근 씨가 더 많이 걱정을 했다(웃음). ‘내 아내가 보면 어떡하냐’고 하더라(웃음)”며 “(물론 처음엔 걱정을 했지만 나중에는)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눠서 크게 걱정을 안하게 됐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괜찮았다. 촬영장에서 무슨 담대한 마음이 생겼는지 걱정이 없었다. 또 카메라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연기한 과정을 전했다./purplish@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