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룡 강원FC 대표이사가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 경종을 울리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야구판에 몸담고 있다가 지난 2년 동안 K리그 대표이사로 지내며 몸소 깨달은 현실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OSEN은 최근 조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도민구단인 강원FC의 수장으로서 지낸 지난 2년간의 평가와 함께 K리그가 대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단장으로 7년간 일했고 누구보다 경영 마인드가 투철한 인사로 알려진 조 대표였기에 K리그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상당히 궁금했다.
실제 조 대표는 '5% 법칙'이란 책도 냈다. 강원FC 대표이사로 축구계에서 와서 지낸 1년 반의 기록(승격에서 상위스플릿까지)을 질문 응답 형식으로 경영적 관점에서 썼다.
▲ 선배들이 남긴 유산 어디로 갔나
조 대표의 대답은 쇼킹했다. 그는 우선 "우리 K리그는 이제 35년 역사를 자랑하게 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K리그가 박수 받을 일이 있었나? 2002년 한일월드컵은 사실 K리그가 아니라 대한축구협회가 받은 박수였다"고 밝혔다.
K리그는 현재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 조 대표의 주장이다. 조 대표는 "2년간 클래식(K리그1)과 챌린지(K리그2)를 경험하고 난 뒤 내린 지금의 솔직한 결론은,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K리그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앞으로 20년 동안은 희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조 대표는 "지구의 수명이 앞으로 약 30억~40억 년쯤 남았다고 한다. 언젠가 소멸될 지구, 그 안에서 우리 인류가 갖고 있는 문화유산들을 후손들에게 잘 가꿔서 넘겨주는 것이 먼저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휴대전화, 기차, 안경 등이 다 선배들이 남긴 유산이다. 그런데 축구는 지금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조 대표는 "리그가 건강하려면 K리그가 돈버는 것이 아니라 회원사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리그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구단들은 입장관중, 중계권수입, 광고 3가지 주요 항목에서 수입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들 항목들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뤘을 때 "구단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구단들이 건강해야 리그도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조 대표는 "그런데 그 어느 지표도 K리그가 건강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조 대표는 "축구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돌아보면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우리끼리는 모르겠지만 글로벌적인 시각에서 보면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 멀게는 유럽과의 발전 속도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렇게 느껴지게 하는 제도 중 하나가 이사회다. 조 대표는 "K리그 여러 현안을 처리하는 이사회는 K리그에서 2년 이상된 사람만 참석할 수 있다. 사실상 도시민 구단 대부분 자격이 없고 기업구단만 된다고 볼 수 있다. 평균 재임기간이 3년인데 1년만 있다가 나가란 소리"라며 "당신 구단이나 잘 챙겨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K리그와 관련된 여러 사항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 K리그 1등은 전 세계에서 몇 등?
자연스럽게 강원FC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 대표는 챌린지와 클래식을 다 경험한 것이 강원FC를 꾸려가는 데 큰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지난 2016년 강원FC 대표이사로 부임, 승격을 맛봤고 지난 시즌에는 상위 스플릿에 포함돼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조 대표는 "우선 챌린지를 경험하며 1년 동안 '한국 축구가 이 정도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클래식에 진출한 후 승격 공신들과 재계약을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스쿼드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클래식 팀들과 붙어보니 아니더라. 두터운 것은 당연하고 기량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스쿼드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다.
이런 스쿼드 수준을 느끼면서 동시에 과연 한국 축구 스쿼드는 지구상에서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봤다는 조 대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는 전 세계 해당 포지션에서 몇등이나 할까. 피겨로 치면 김연아 같은 선수 20명 정도 육성하면 바르셀로나나 맨유를 잡지도 않겠나. 이왕 축구를 시작했으면 세계 10대 클럽을 만든다든가, 세계 포지션에서 알아주는 선수가 되겠다든가 하는 엉뚱할 수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하는 확실한 목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 대표는 강원FC 선수들이 좀더 노력해주길 바란다. 선수들에게 "여기서 머물면 안 된다. 더 열심히 해서 세계에서 순위를 끌어올리라"고 말할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축구선수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조 대표는 "K리그와 다른 나라 리그의 스쿼드는 차이가 분명히 난다. 지금은 우리나라 투자금액이 전세계와 비교해 적다. 그래서 우리가 선수를 빼앗기는 구조다. 그러면 K리그 선수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일단 축구는 수준이 떨어지면 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손흥민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보신 분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K리그에는 미래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선수는 떠나도 바르셀로나는 남는다?
조 대표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FC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바뀐다고 바르셀로나 축구가 바뀌진 않는다"는 말을 했다. 결국 감독이 바뀌면 선수가 다 바뀌는 지금의 K리그 구단 실태를 언급한 것이다. 그는 "지금 구조적인 문제가 감독이 바뀌면 선수가 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기 선수를 뽑으면서 부조리가 발생한다. 뛰다가 다치면 월급은 월급대로 다 주고 다른 선수를 또 뽑는다. 그러니까 성적은 안 나오고 매번 돈을 낭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조 대표는 구단의 축구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새 감독이 오면 자기 선수로 다 뽑는다. 전체적으로 호흡이 짧다. 정작 유소년 육성을 구단이 해야 하는데 되지 않는다"면서 "강원은 강원 축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떤 축구를 할 건지 고민했고 강원축구의 철학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최윤겸 감독은 내가 뽑은 것이 아니다. 나는 리그 개막 2~3일 전인 3월에 부임했다. 감독을 바꿀 거냐고 해서 그냥 유임시켰다. 결과적으로 강원FC는 승격을 이뤘다. 이후 최 감독이 사임했고 감독 후보들을 인터뷰하면서 구단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 구단 철학 교감나눈 송경섭 감독
강원FC는 올 시즌 송경섭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에 올렸다. 강화부장을 감독으로 올린 파격 내부 인사였다. 이는 강원FC의 축구철학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 대표는 "강원의 축구철학을 이해하는 감독이 없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뽑자고 했다. 송 감독은 육성형 감독이다. 나와 마음이 통한다. 여유를 가지고 하자고 했다. 정 안 되면 다시 강화부장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김병수 강화부장이 감독이 된다는 건 아니다. 강화부장을 2명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송 감독을 경질할 경우 김병수 부장을 감독으로 앉힐 수 있다는 루머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육성형 감독이라도 기다려줄 수 있을까. 조 대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지만 행복도 목표가 아니고 과정이지 않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잘 나올 것이란 확신이 있다. 물론 성적이 안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하면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다.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과는 반드시 나온다. 정조국, 발렌티노스 등 부상자들이 대거 복귀하고 있는 등 계속 스쿼드를 강화하고 있다. 영입 선수만 20명이 넘는다. 가장 고용창출이 높았던 구단이 바로 강원이다"고 장담했다.
이런 호언장담 속에는 스쿼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조 대표는 "지난 시즌 주변에서 결국 2부로 떨어질 것이라며 온갖 비방을 해댔다. 그렇지만 나는 0.0001%도 안흔들렸다. 난 즐겼다. 왜냐면 내가 뽑은 스쿼드가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짜놓고 약속된 대로 돌아가야 한다. 더구나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스쿼드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면에서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나 조세 무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을 것이다. 클래식 감독들이 챌린지 감독들보다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원FC는 올 시즌 목표를 작년에 못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진출로 잡았다. 상위스플릿은 물론 ACL 출전권이 주어지는 3위 안에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유니폼도 바꾸지 않았다. 조대표는 "올해는 에베레스트 산 정복을 다시 하는 셈이다. 한 번 실패를 맛봤으니 이제 두려움이 없다. 절대 2부리그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송경섭 감독에 대한 확신이 있다. 스타감독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위기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다. 무서운 곳엔 같이 가는 거다. 김병수, 조태룡, 단장, 부단장 등 다 같이 힘을 합해 옆에서 도와줄 것이다. 연패에 빠진다고 모든 것을 감독 탓으로 돌리진 않는다. 우리는 다 같이 뇌를 합쳤기 때문에 이긴다"고 말했다.
▲ 강원FC가 망한다고?
조 대표는 "내가 부임한 후 매년 흑자였다. 첫 해의 경우 임은주 전 대표(현 FC안양 단장)가 예산을 작성했다. 잡아놓은 예산이 85억 원이었다. 도지원 40억 원, 강원랜드 40억 원, 5억 원은 자체적(시도지원금, 입장수익)으로 벌겠다고 돼 있더라. 그런데 강원랜드에서 절반이 들어오지 않았다. 엄연히 말하면 그 해 예산은 65억 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내가 영업을 통해 약 13억 원 정도를 더 벌어들여 78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정말 시작부터 힘들게 영업전선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년 예산은 원래 188억 원이었다. 그런데 198억 원을 만들었다. 도 지원이 추경 두 차례 포함 120억 원이었고 강원랜드가 40억 원, 나머지는 38억 원을 벌었다. 올해 예산은 225억 원 정도가 될 것 같다. 도 예산이 90억 원이고 추경까지 합하면 120억 원이 될 것이고 영업을 통해 50억 원 매출을 올릴 것이다. 선수 연봉은 대략 100억 원 수준이다. 이는 작년과 비교해 10억~30억 원 정도 늘어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인턴 문제? 허위 사실 유포는 법률 검토 중
강원FC는 인턴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수많은 인턴을 채용해서 실컷 부려먹고 내쫓았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조 대표는 "우리나라 축구단 중 인턴 채용을 통해 가장 많은 비용을 쓴 구단이 바로 강원FC다. 거의 매달 인턴을 뽑았다. 한 명당 월급이 법 규정에 맞춰 150만 원이고 식대 15만 원이었다. 인턴을 뽑을수록 인원 증가는 당연했다. 현재 강원 직원은 10명에서 30명까지 넘어갔다. 대부분이 인턴십을 거쳐 정직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직원 전환 비율도 50%에 육박한다.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인건비가 3개월만 해도 1인당 500만 원은 된다. 세계적인 수준의 눈높이로 운영하는 구단임을 느껴야 그들도 앞으로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육성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는 "계속 인턴 관련 이야기가 나올 경우 법률소송도 검토할 것이다. 악성 댓글 및 커뮤니티에서 과장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이 있다. 정당한 비판은 수용해 구단을 더 나은 방으로 이끌고자 한다. 하지만 악의를 갖고 허위, 과장 사실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비난을 퍼붓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이미 IP추적을 해서 누가 댓글을 달고 있는지는 파악한 상태다. 법률적인 검토도 하고 있다"면서 "축구계 인턴십을 쌓게 한 최고의 구단은 강원FC라는 점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구단 직원의 80% 이상이 인턴십을 통해 강원FC에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강원을 통해서 축구계에 이정표로 남고 싶다. K리그가 지금 왔던 길과 헤어지게 만들고 싶다. 2년 동안 이렇게 왔으면 앞으로 20년도 똑같을 것이다. 그 20년 동안 세계 축구는 어디로 가겠나. 아시아의 아프리카가 될까 걱정이다. 이런 모든 것과 작별하고 새롭게 출발 선상에 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