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있다.
넥센 신인 김선기(28·넥센)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세광고시절 ‘포스트 박찬호’라고 불렸던 김선기는 2010년 메이저리그 시애틀과 입단계약을 맺었다. 5년 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15년 방출의 설움을 맛봤다. 김선기는 2015년 상무에 입단해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2017년 전역을 앞두고 프로야구 2차 지명에서 1라운드 8순위로 넥센의 유니폼을 입었다.
중고신인으로 프로에 입단한 김선기는 이제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 지난해 9월 프로야구 2차 지명 후 어떻게 지냈나?
▲ 9월에 뽑히고 몸만들기에 전념했다. 올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운동만 해왔다. 다치면 안 되니까 어깨와 팔꿈치 보강운동에 중점을 뒀다. 몸 건강하게 올 시즌 치르려고 준비했다.
- 가장 마지막 투구는 10월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였다.
▲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2개월 반 쉬고 1월부터 공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때는 종합 3위를 했다. 한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필리핀과 3,4위전에서 5이닝 무실점했다. 대만, 일본과 중요한 경기에는 다른 선발투수가 나왔다. 일본이 왼손타자가 많아서 바뀌었다.
- 요즘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면?
▲ 오전에 8시에 나와서 각자 스트레칭하고, 복근운동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마지막에 오후 1시까지 공을 던진다. 오후에는 낮잠 자고 TV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1라운드 넥센 지명 시 소감은?
▲ 8번까지 미뤄졌다. ‘아 2라운드까지 가면 어쩌나?’라고 생각했다. 뽑히고 나서 굉장히 좋았다. 나이도 있는데 프로팀에 가게 돼 만족했다.
- 8순위까지 밀렸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섭섭하지 않았나?
▲ 제일 큰 것은 나이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서 부상위험도 있으니까. 섭섭하진 않았다. 팀에 와서 잘하는 게 중요하다. 크게 생각 안했다.
- 세광고시절 ‘포스트 박찬호’라고 불렸다.
▲ 박찬호 선배님과 같은 충청권이고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지 않았을까. 박찬호 선배처럼 직구가 빠르고 그렇지는 않았다. 스프링캠프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146km정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152km까지 나왔다.
- 당시 미국무대 도전을 선택했던 이유는?
▲ 시즌 초반에 일찌감치 미국 스카우트가 접근했다. 이야기하다보니 아버지도 ‘이왕 할 거니 큰물에서 놀아라!’하셨다. 뒤를 생각 안하고 바로 도전했다. 내 실력의 확인이라기보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경험해봐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중에 국내복귀 그런 것은 생각 안하고 앞만 보고 갔던 것 같다.
- 2010년 시애틀에 입단했다. 미국무대 도전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 시즌 시작하면 시골동네에 가니까 먹는 것도 많지 않았다. 외국선수들과 한 집에서 3-4명 같이 살았다. 차도 없어서 마트 갈 때도 빌려 탔다. 먹는 것도, 의사소통이나 생활도 어려웠다. 야구 측면으로 딱히 힘든 것은 없었다. 야구를 더 잘했어야 했다. 말이 시애틀이지 5년 동안 2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주로 버지니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에 있었다. 싱글하이리그까지 갔었다.
- 2015년에 방출의 설움을 겪었다.
▲ 실력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빨리 군대를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미 국내서 야구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 2015년 방출 후 상무에 입단했다.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우승에 일조하는 등 야구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 상무를 안 갔으면 넥센에 못 들어왔을 것이다. 야구감각을 잘 유지해서 높은 라운드에 뽑혔다. 박치왕 감독님에게 감사드린다. 매년 찾아뵙겠다고 약속드렸다. 지난 번에 갔을 때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감사했다. 감독님이 ‘2년 동안 아프지 말고 꾸준히 관리 잘해서 프로 가서도 성공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 비슷한 경험(메이저 도전 후 유턴)을 했던 김성민이 넥센서 선발후보로 잘 던지고 있다.
▲ 미국에서 자기도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래도 미국팀에 입단했던 선수라 동병상련이 된다. 이번에 나도 미국 스프링캠프에 가서 잘해서 보여줘야 한다. 1군에서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 뒤로 기회를 주신다면 잘해야 한다. / jasonseo34@osen.co.kr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