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위즈랜드] 前 kt 통역 안찬호, 다시 선수를 꿈꾸다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8.01.28 15: 00

구단 입장에서는 '만점 통역'이었다. 안찬호(25)는 2016년까지만 해도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3살 때부터 고교 시절까지 미국에서 보냈으니 영어 능력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야구에 대한 이해도에 언어 능력까지. 구단에서는 복덩이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역 업무 첫 날부터 선수 생활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겼다. 결국 독립리그를 통해 다시 유니폼을 입는다. 그렇게 안찬호는 다시 선수의 꿈을 꾼다.
# 차별이 키운 프로의 꿈

1993년생 안찬호는 만3세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처음 배운 언어가 영어였다. 오히려 한국어가 서툴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프로 골퍼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골프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 하나 치고 한참 걸어야 하는 정적인 스포츠가 어린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즈음 야구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친구가 뛰던 리틀리그를 구경 갔을 때, 그의 심장이 뛰었다. 부모님은 그에게 '야구 한 번 해볼래?'라고 제안했고, 주저 없이 '콜'을 외쳤다. 그렇게 안찬호는 야구 선수로 입문했다.
실력은 괜찮았다. 주로 투수를 맡았던 그는 매 시즌 종료 때마다 리틀리그 올스타에 선정됐다.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지만, 동양인에게 미국 야구 벽은 높았다. 매년 성적이 괜찮았음에도 막상 올스타 무대에서 출장 기회는 없었다. "나도 기회를 주면 잘할 수 있다. 내가 프로에 가서 '나도 이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찬호의 이야기다.
안찬호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한국에 돌아왔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는 "한국 야구는 기본기가 튼튼하다. 미국 야구와 한국 야구의 장점을 섞어 프로에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진학을 1년 미룬 뒤 청주고등학교에 유급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경희대에 입학, 프로 무대 진출을 타진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런 안찬호에게 프로 입단의 길이 열렸다. 단, 선수가 아닌 통역으로였다.
# '롤모델' 피어밴드를 꿈꾼다
안찬호는 2017시즌을 앞두고 kt에 통역으로 입단했다. '선수 경력은 여기까지인가'라는 마음이었다. 스프링캠프 첫날, 그의 통역 업무가 시작됐다. 라이언 피어밴드와 돈 로치, 조니 모넬 옆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안찬호는 "너무 어색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웜업하고 운동해야 했는데,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다시 선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결심을 내리자 외인 투수들은 일종의 '멘토'였다. 특히 '롤모델' 라이언 피어밴드와 1년을 보낸 건 큰 자극이었다. 피어밴드는 캐치볼 파트너로 안찬호를 지명했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안찬호는 "피어밴드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거의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셈이었다. 피어밴드도 내가 선수로 복귀하는 걸 적극 추천했다. '공이 괜찮다. 나이도 어리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라는 조언도 건넸다"고 회상했다.
아무리 선수 복귀를 결심했어도 업무가 우선이었다. 그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만 자면서 운동을 계속했다. 홈경기 기준, 저녁 11시쯤 외국인 선수들이 퇴근을 마친다. 그때부터 5시간 정도 개인 운동했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잠들어도 정오 출근을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만큼 선수 복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통역으로서는 만점이었다. 그가 선수 복귀 의사를 밝혔을 때, 나도현 kt 운영팀장은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몇 년 더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안찬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나도현 팀장은 "미국에서 야구를 했던 만큼 통역으로서 능력은 최고였다. 거기에 본인의 욕심까지 더해지니 이만한 자원이 없었다"라며 "꼭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인생 선배로서 앞으로의 길을 진심으로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 독립리그에서 선수 생활 'ing'
안찬호는 시즌 종료 후 몇몇 구단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kt도 포함됐다. 그러나 결과는 아쉬운 낙방. 안찬호는 결국 독립리그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제2의 신성현, 황목치승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안찬호는 "과정이 고되겠지만 헤쳐나갈 준비 돼있다. 언젠가 프로 마운드에 오른다면 바라만 봐도 의지가 되는, 피어밴드 같은 투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통역 업무 직원은 운영팀 소속이다. 그곳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으니, 프런트 직원으로서 '꽃길'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찬호는 그 길을 박차고 나섰다. 거기에 프로 팀도 아닌 독립리그에 뛰어들었다. 여러 모로 힘든 시기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안찬호는 프로 마운드에 서는 그 날을 기약하며 스파이크 끈을 동여맸다. /kt 담당 기자 i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