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죽었다고 했다. 30분간의 심폐소생술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경찰들은 숨진 청년을 병원으로 옮기자고만 했다.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고, 청년의 배에서는 가득찬 물 때문에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숨기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의문스러운 청년의 죽음을 두고 나라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숨기려 했지만, 의사는 화장실에서 만난 기자에게 청년의 죽음이 ‘쇼크사’가 아닌 ‘고문사’라고 밝힌다.
의사가 밝힌 진실로 비로소 청년의 죽음, 그러니까 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평범한 사람의 선택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만들어낸 거대한 물줄기가 진실을 세상에 알렸지만, 의사 오연상의 선택은 1987년의 진실을, 영화 ‘1987’의 실마리를 열었음에 틀림없다.
배우 이현균은 영화 ‘1987’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물꼬를 튼 故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의사 오연상을 연기했다. 상업 영화로는 두 번째, 이름이 있는 역할로는 처음으로 맡게 된 막중한 책임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연기를 하면서는 너무 현장에 빠져 있어서 뿌듯함과 부담감을 전혀 못 느꼈죠. 그런데 촬영을 모두 마치고, 영화에 대한 뿌듯함을 그때부터 느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맡은 역할에 대한 부담감을 작품을 모두 찍고 나서 느끼게 됐죠. 부담보다는 고민이 더 컸죠. 제가 혹시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1987’은 수많은 배우들이 빚어낸 영화다. 대사가 있는 배우만 해도 125명. 어마어마한 배우들의 향연 속에서도 故 박종철(여진구)을 최초로 검안한 의사 오연상을 연기한 이현균은 쟁쟁한 배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오연상) 선생님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시사회 때 처음 오연상 선생님을 뵈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각자의 본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요. 제게 나라가 각자의 본분을 지키고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1987’은 6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주행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1987’의 흥행 뒤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올곧은 시선의 장준환 감독이 있다. 이현균은 장준환 감독에 대해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다. 같은 현장에서 함께 하면서, 디렉팅을 들으면서 감독님이 따뜻함이 전해졌다”며 “따뜻함에 집요함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다. 정말 많은 분들이 나왔는데도 단 한 분도 놓치지 않고 화면에 꽉 차게 담아주셨다는 건 감독님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을 일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쓰신 감독님의 노고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장준환 감독과 함께 ‘1987’을 직접 찍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관객으로서도 많이 울었다는 이현균.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와 역사의 무게를 되돌아보며 장준환 감독을 비롯해 김윤석, 김태리 등 배우들이 울었듯이, 관객들이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서도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듯이 이현균 역시 모든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이현균은 “정말 먹먹했다. 우리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특히 의미가 있다. 저 역시 같이 봤던 지인들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영화관에서 스크린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다가 나와서 다같이 술 한 잔 했다.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1987년 당시 네 살이었다는 이현균은 실제 인물인 오연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실제 인물을 옮겨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안경을 낀 모습과 얼굴형, 이목구비의 느낌까지도 비슷해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이현균은 “감독님이 그런 걸 보고 뽑으신 것 같기도 하다”고 웃으며 “영화 찍을 때 일부러 살을 10kg 정도 찌웠다. 조감독님이 절 가장 먼저 보시고 오연상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신 게 연극제에서 상을 받을 당시였는데, 그때가 한창 살이 쪄 있을 때였다. 감독님을 처음 만나니 ‘살을 많이 찌워주세요’라고 해서 영화 찍을 당시 살을 찌웠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살찌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물과 놀라운 싱크로율에 대해서는 “정말 분장 선생님의 힘이다. 제 얼굴에서 저 역시 오연상 선생님의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고 너털 웃음을 지었다.
이현균은 아직 상업 영화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9년 데뷔작 ‘언니들’을 시작으로 ‘고령화 가족’, ‘로미오와 줄리엣’, ‘남자충동’, ‘프랑켄슈타인’ 등 굵직한 작품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연극배우다. 지난 2015년에는 연극 ‘뽕짝’으로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박해수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캐스팅 될 당시 연극 ‘남자충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는 이현균은 “형이 주인공이라고 생각도 안 했다. 형도 주인공이라고 말을 안 해줬다”며 “형이 간절하게 캐스팅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돼서 너무 깜짝 놀랐고, 너무 반가웠고,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규형, 박해수, 박호산 등 연극·뮤지컬 배우들이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이현균은 자신만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현균은 “무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다 잘되는 건 아니다. 우리 눈에는 상업 작품으로 나가서 잘 되시는 분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연극을 같이 했던 사람 중에서는 100명 중에 1명 정도가 잘 된 거다. 예전보다는 배우가 쓰일 수 있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에 많이 보이는 것 같다”며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좋은 배우들이 엄청나게 많다. 또 잘된 분들은 잘된 만큼의 노력이 있다고 본다. 매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 분들의 엄청난 노력이 없으면 안 될 일이다”라고 무대 배우들의 숨겨진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현재 이현균은 차기작으로 ‘상류사회’(변혁 감독)를 촬영 중이다. 박해일의 비서관 역할로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의사에서 비서관까지, 스크린에서는 엘리트 이미지를 이어가게 된 이현균은 “연극할 때는 오히려 밑바닥 인생을 더 많이 연기했다. 연극할 때는 건달, 조폭, 학생도 양아치 학생이었다. 하다 보니까 영화에서는 연이어 엘리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고 껄껄 웃었다.
‘1987’을 통해 자신의 진면목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이현균. 연기를 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늘 묵묵하게 연기하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각오다.
“앞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되도록 많은 작품에서 배우 이현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영화 ‘1987’이 많은 분들에게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놓치고,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1987’을 보시면서 이런 역사가 있었고,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을 많이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mari@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