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서 가장 롱런하기 어려운 포지션 중 하나가 2루수다. 2루수·유격수를 모두 경험했던 내야수는 "유격수보다 2루 수비가 체력적인 부담이 더 크다. 좌우로 계속 움직여야 하고, 백업 플레이도 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베테랑 2루수는 보기 힘들었다.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3회 이상 수상자 정구선·강기웅·박종호는 30대 초반부터 하강 곡선을 그렸다. 김성래와 안경현은 30대 초중반 때부터 2루를 떠나 1루수로 포지션을 바꿔 불혹까지 롱런할 수 있었다.
지난 24일 한화와 2+1년 총액 35억원에 FA 재계약을 체결한 정근우는 '2루수는 롱런하기 어렵다'는 역사와 마주했다. 1982년생인 정근우는 올해로 만 36세의 베테랑이 됐다. 역대 KBO리그에서 만 36세 이상 선수가 순수 2루수로 100경기 이상 출장한 전례가 없다. 올 시즌 정근우는 만 36세 이상 나이에 최초로 100경기 이상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는 2루수에 도전한다.
지난 2009년 한화 김민재, 2012년 롯데 조성환이 만 36세 나이에 100경기 이상 뛰었지만 순수 2루수로는 각각 45·79경기에 그쳤다. 김민재는 200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2013년 조성환은 만 37세의 나이에 74경기를 출장했지만 2루수로는 27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2014년이 조성환에겐 마지막 해였다.
이 같은 2루수의 역사 때문에 한화는 FA로 풀린 정근우와 3년 이상 계약에 주저했다. FA 시장 개장 후 77일 만에 2+1년으로 절충안을 찾았다. 계약 총액 35억원 중 보장액 22억원, 옵션액 13억원. 옵션 비중이 37.1%로 높다. 관계자들은 "옵션 비중뿐만 아니라 달성 기준도 높다. 조건이 만만치 않지만 정근우 선수 본인이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고 입을 모았다. 3년간 풀타임으로 수준급 성적을 내야 옵션이 모두 충족 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근우가 만만찮은 옵션을 감수한 것은 그만큼 자신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판단은 보시는 분들이 해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열심히 뛰면 된다"며 "30대 후반 주전으로 뛴 2루수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37~38살 그 후에도 주전 2루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앞으로 충분히 그렇게 할 자신있다"고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정근우는 지난 2016년 11월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았지만 2017년에도 8월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팀의 111경기 중 105경기를 뛰었다. 팔꿈치 부상도 도루 과정에서 충돌로 인한 사고였을 뿐, 정근우의 나이에 따른 내구성 문제는 아니었다. 172cm, 80kg 작은 체구에서 뿜어지는 순발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무릎 수술 후 도루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그만큼 장타력을 끌어올렸다.
정근우는 주 포지션 2루수로 통산 1000경기 이상 소화한 선수 중 최고 타율(.305)에 최다 안타(1649)·득점(949)·2루타(281)· 루타(2312)·볼넷(589)·도루(350)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당장 은퇴해도 역대 최고 2루수 성적을 남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근우는 36세 이상 2루수 최초로 주전 풀타임 시즌에 도전한다. 그는 "다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번 FA 계약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열심히 한 번 달려보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