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그만둘 뻔한 시련도 이겨냈다. 앞으로 무엇을 해내도 두려울 게 없다.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한화 포수 엄태용(24)은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지난 2012년 6라운드 전체 59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13년 6월 1군에 콜업됐다. 그해 후반기 출장 기회를 늘렸고, 다음 시즌 주전 포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14년을 끝으로 엄태용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예고없이 찾아온 혈행장애 때문이었다.
▲ 예고 없이 찾아온 불치병
그때가 2014년 11월,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 때였다. 엄태용은 "어느날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른손 중지 두 마디가 새파랗게 변했다. 병원에 가보니 '절대 운동하면 안 된다'고 했라. 손가락부터 손바닥까지 혈관이 5군데 막혀 있었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다"고 원인불명의 혈행장애와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러나 손가락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까맣게 썩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팀에서 나와 따로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약물 치료 외에는 쉬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야구를 잘 안 봤다. 야구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화났다. 스스로 마음을 잡기 어려웠다"는 게 엄태용의 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손가락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다시 야구가 하고 싶어졌다. 지난해 1월 다시 한화 팀에 돌아왔다. 그때 힘이 되어준 게 선배 송창식이었다. 송창식도 손가락 혈행장애 때문에 은퇴를 했다 다시 돌아온 아픔이 있었다. 엄태용은 "송창식 선배님께 많이 물어봤다. 선배님께서 '나도 손가락 때문에 야구를 한 때 그만뒀지만 다시 돌아왔다. 너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그 덕분에 많은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물론 100% 완치가 없는 병이라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엄태용은 "2년 정도 치료하면서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 지금은 손이 시려운 정도다. 그래도 재발 위험이 있어 평생을 관리해야 한다"며 "어렵게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힘든 시간을 보낸 만큼 두려울 게 없다. 이제는 다른 것 필요 없다. 이렇게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 4년만에 1군 진입 목표
엄태용은 지난해 5월부터 퓨처스리그에 모습을 드러내며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최계훈 퓨처스 감독은 "손가락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든 말하라. 야구를 오래 해야 하니 욕심내지 말라"고 주문했다. 무리 않는 선에서 육성군부터 퓨처스 경기 마스크를 썼다. 체중도 30kg 정도 뺐다. 당시 박종훈 단장도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프레이밍이 괜찮다"며 기대를 보였다.
11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선 강인권 신임 배터리코치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강인권 코치는 "체격도 좋고, 그에 비해 포수 구역 내에서 순발력이 빠르다"고 평가했다. 엄태용은 "많은 소득이 있던 마무리캠프였다. 오랜 기간 쉬었기 때문에 내 것을 찾는 것보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싹 바꿨다. 코치님에게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올 시즌 목표는 2014년 이후 4년만의 1군 진입이다. 그는 "처음 1군에 올라갔을 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좋은 기회였는데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지금은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기회가 왔을 때 해야 한다. 이전보다 멘탈적으로도 많이 달라졌다"며 "부상 없이 팬들이 많이 보시는 1군 경기장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하나, 지난해 11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잘하고 싶다. 엄태용은 "마무리캠프 기간 중 외할머니가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야구를 많이 좋아하셨다. 1군에서 뛸 때 공주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대전야구장에 오실 정도였다"며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