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NC 다이노스 모창민(33)의 시즌은 최고의 나날이었다. 지명타자와 1루, 3루를 오가면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고, 경기에 나서는 순간마다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뒤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고 빛난 것일까. 지난 2008년 데뷔 이후 9시즌 만에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시즌 기록들을 갈아치우면서 공포를 심어주는 타자로 거듭났다. 136경기에 나서며 타율 3할1푼2리(474타수 148안타) 17홈런 90타점 64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846의 기록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13년 NC의 1군 진입 멤버로서 자신을 데려온 이유를 비로소 증명한 시즌이었다.
#애리조나의 남자,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다
‘호타준족’의 타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모든 이들이 예상했다. NC가 그를 뽑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긴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모창민은 ‘게으른 천재’ 스타일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던 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운동을 해내며 지금의 자리로 올라서기를 그 누구보다 바랐다. 다만, 조금의 여유와 휴식을 가질 수 있던 것이 지난해를 최고의 시즌으로 만들 수 있던 배경이 됐다.
모창민은 “원래 스타일이 마무리 훈련이 끝나면 1주일 정도만 쉬고 몸을 바로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캠프와 시범경기까지 페이스가 좋다가 시즌 때 떨어졌다. 너무 몸을 일찍 만들었다. ”면서 “그러나 지난해에는 12월 말 1월 초부터 운동을 시작하다보니 시즌 때 몸이 좋아졌다. 풀타임을 뛰었을 때는 12월이 쉬는 게 좋았다. 지난해는 그 반대였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NC의 스프링캠프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줬지만, 결국 시즌에서는 그 기대를 성적으로 치환시키지 못했다. 어떻게보면 불명예였다. 당시는 휴식의 중요성을 잘 몰랐을 때였다. 지금은 다르다. 그는 “그 전에는 운동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몸이 빨리 지쳤다. 그러나 작년부터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바꿔보려고 한 것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휴식의 결과로 꾸준한 경기력을 시즌 끝까지 선보였고,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 ‘나의 은인’, 김경문 감독님
모창민에게 거는 기대는 당연히 직접 그를 뽑은 김경문 감독이 가장 컸을 것이다. 2013년 모창민에게 주전급 자리를 건넨 것도 김경문 감독이다. 자신이 지금의 자리로 올라서기까지의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님께서 안 계셨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다. 나를 지명해주신 것, 기회를 주신 것은 감독님이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모창민이다.
그렇기에 최고의 성적을 거둔 지난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시즌이 지난 2013년 NC에서의 첫 시즌이었다. 모창민은 “주전도 처음이었고 100경기 넘게 나가고 100안타 등 처음으로 주전을 해보면서 기록을 세운 팀이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고, 백업으로 있을 때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했는데 감독님을 만나서 기록을 만들었다”면서 “부상으로 공백이 있을 때도 ‘뭘 해도 안 되는구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감독님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재활도 더 열심히 했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김경문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해 최고의 시즌도 결국 김경문 감독이 모창민에게 기회를 줬기에 가능했다.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었고, 주전 지명타자 자리에 이호준 대신 모창민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리고 이호준의 공백을 확실하게 채웠다.
그는 “백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호준 선배도 나이가 있어서 지명타자 기회를 줄테니 준비하라고 하셨다. 기회를 준다고 해서 자신감도 생겼다. 기회를 받는다는 것은 또 책임감이었다”며 “사실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 않았는데 타격코치님과 얘기를 하고 실내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좋아졌다”고 전했다.
20홈런과 100타점에 각각 3홈런, 10타점이 모자란 만큼 개인 기록에 아쉬움은 남을 터. 그러나 모창민은 김경문 감독의 믿음과 함께 어엿한 중심 타자로 성장했다. 그는 “이 정도 수치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2년 주전을 해보고 2년 백업을 해보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면서 “올해 득점권 기회가 많이 걸렸다. 부담이 있었는데, 코치님과 애기를 하면서 힘을 더 빼고, 연습했던 상황 배팅들이 잘 됐고, 타점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모창민의 득점권 타율은 3할3푼8리로 수준급이다.
이어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다. 근데, 한 두 번 지나고 타점도 많이 올리다보니 자신감 생기고, 나중에는 득점권에 주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 타자를 계속하다보니 편안해졌다. 다 감독님께서 계속 믿어주시고 기용해주신 덕분이다”고 말했다.
# 이호준의 후계자와 FA 시즌, 그리고 우승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호준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선수는 바로 모창민이었다. ‘후계자’ 얘기를 꺼내자 모창민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선배님께서 저를 원체 좋아하신다. 그래서 후계자라고 말씀해주신 것 같다. 하지만, 선배님이 올린 커리어를 어떻게 따라 가겠나. 제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을 선배님이 후계자 발언으로 전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창단 첫 시즌, 방법은 달랐지만 SK에서 함께 NC로 온 이호준이었다. 누구보다 이호준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지금의 NC가 자리 잡기까지 기틀을 잡은 것은 이호준의 역할이 제일 컸다는 것이 모창민의 생각이다. “처음에 팀은 여유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팀의 틀을 잘 잡아준 선배가 바로 이호준 선배다. 이호준 선배의 역할이 엄청 컸다”는 것이 그의 말.
이제는 모창민도 이호준이 줬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모창민의 위를 찾아봐도 이제는 손시헌, 이종욱 밖에 없다. 중고참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그는 “이호준 선배가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는 못하더라도 보고 배운 대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 잘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준이 없는, 베테랑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올해다. 그리고 모창민 개인에게도 놓칠 수 없는 시즌이다. 올 시즌 이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프로에 데뷔한 선수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FA 자격 획득이다. 그는 일단 “FA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FA에 대해 이호준 선배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하던 대로 해라’, ‘신경쓰지 말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솔직히 사람인지라 신경 쓰게 된다”면서 “ 근데, 저는 지금까지 온 것도 저는 잘 왔다고 생각한다. FA를 떠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나중에 결과는 따라 올 것.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것 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해보자라고 주문을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치적인 목표는 없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더 많은 홈런’이다. 그는 “단기전이나 중요한 경기에서는 분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홈런이다. 홈런이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올해는 홈런을 많이 쳐야 팀이나 저 개인적으로 좋지 않을까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4년 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지만 번번이 좌절했던 가을의 최종 승자도 다시 한 번 꿈꾸는 모창민이다. 그는 “4년 간 가을야구를 치르면서 확실히 좋아졌다. 근데 우승이라는 것은 하늘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우리 팀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올해가 그때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는 삼세번도 지났다. 우승을 한 번 쯤은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소망을 강조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