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두산 베어스에게는 아쉬움이 짙게 남은 한 해 였다.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지만, 2년 연속 이어오던 정상의 자리에서는 내려왔다. 그러나 후반기 7할 승률 질주로 여전히 강력한 저력을 뽐냈고, 류지혁, 조수행 이영하, 김명신, 박치국 등 신인급 선수의 성장은 내년 시즌 전망을 밝히기에 충분했다. 두산의 2017년을 ‘말’과 함께 되돌아봤다.
"너 박건우다."
올 시즌 초반 박건우는 지독한 부진에 시달렸다. 개막 후 4월까지 박건우가 기록했던 타율은 1할8푼. 자진해서 삭발을 감행하며 분위기 전환을 꾀하는 등 부진 탈출을 위해 노력했지만, 박건우의 타격감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박건우는 4월 22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열흘 뒤 박건우는 1군에 올라왔고, 5월 2일 복귀전서 3안타 맹타를 휘둘렀고, 이후 3할 중후반 이상의 꾸준한 타격감을 유지하며 타율 3할6푼6리로 시즌을 마감했다. 김선빈(KIA· .370)에 이은 타율 2위 성적. 그 뒤에는 박건우를 향한 김태형 감독의 믿음도 있었다. 당시 복귀한 박건우에게 김태형 감독은 긴 말보다는 "너 박건우다"라는 한마디를 했다. 이후 박건우는 "사실 내가 대단한 선수도 아닌데, 그렇게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김태형 감독의 한 마디는 이제는 '너 박건우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선수를 만들게 됐다.
"자기가 올라가서 잘 큰 거지."
올 시즌 두산의 수확 중 하나는 함덕주의 성장이다. 지난 2013년 두산에 입단한 함덕주는 올 시즌 선발로 주로 나와 35경기 나와 9승 8패 2홀드 평균자책점 3.68로 활약했다. 두산의 고민이었던 5선발 자리를 확실하게 차지한 함덕주의 모습이 김태형 감독 눈에도 마냥 기특했다. 김태형 감독은 함덕주의 성장 이야기에 "기회를 줬을 때 본인이 잘 잡고 성장한 것"이라며 "자기가 마운드에서 스스로 잘 큰 것"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선수들이 '너 밖에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선발에서는 함덕주가 활약했다면 불펜에서는 김강률이 기량을 꽃피웠다. 올 시즌 김강률은 70경기에서 7승 2패 7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했다. 특히 후반기 34경기에서 5승 무패 7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1.42를 기록하며 팀의 뒷문 단속 일등 공신이 됐다.
투수로서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김강률은 타석에서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었다. 지난 8월 23일 인천 SK전에서 김감률은 5-6으로 뒤진 8회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9회초 팀이 9-6으로 뒤집은 가운데, 2사 1,2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섰다. 대타 카드를 모두 사용했고, 지명타자 자리도 소멸된 탓에 김강률은 타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강률은 SK 백인식을 상대로 적시타를 뽑아냈고, 생애 첫 안타와 첫 타점을 동시에 기록했다.
깜짝 놀란 그 순간. 미소를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김강률을 향해 동료들은 웃음과 축하의 말을 하나씩 남겼다. 그러나 몇몇 동료들은 '타박'(?)을 하기도 했다. 바로 마무리투수 이용찬의 세이브 기회가 날아간 것. 김강률은 "선수들이 '너 밖에 모른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지막까지 우리 야구 하겠다."
9월 24일 두산으로서는 의미있는 승리를 거뒀다. 전반기 1위 KIA 타이거즈와 13경기 차로 벌어져있던 두산은 후반기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며 결국 승차를 모두 지우고 공동 1위로 올라섰다. 개막전 이후 177일 만에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됐지만, 김태형 감독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태형 감독은 당시 경기였던 잠실 kt전을 마치고 "잔여 경기를 일정을 고려했을 때 우승은 쉽지 않다. 마지막까지 우리 야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정규시즌 우승은 KIA로 돌아갔지만, 두산의 상승세는 역대급 순위 전쟁을 낳기도 했다.
"안 뺄 테니 자신감 있게 치고 와!"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면서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한 두산. 그러나 NC에게 1차전을 내주면서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위기가 닥쳤다. 믿었던 장원준이 홈런 3방을 내주는 등 흔들렸고, 결국 5⅓이닝 6실점(5자책)을 기록한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4-6으로 지고 있던 6회말 두산은 김재환-오재일-양의지가 볼넷을 얻어내 무사 만루 역전 찬스를 맞았다. 타석에는 최주환이 들어섰다. 최주환은 앞선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다. 승부처인 만큼, 대타 기용도 고려해볼 수 있었지만, 김태형 감독의 선택은 최주환이었다. 최주환 역시 대타 교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김태형 감독은 "대타 교체를 하지 않을 테니 자신 있게 스윙을 하라"고 힘을 실어줬다. 결국 최주환은 생애 첫 포스트시즌 홈런을 날리며 믿음에 응답했고, 두산은 17-7 대승을 거뒀다. 최주환은 생애 첫 포스트시즌 데일리 MVP에 선정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