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늑대'부터 '화유기'"..생방송 드라마 11년째 제자리걸음
OSEN 하수정 기자
발행 2017.12.25 16: 59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 생방송 시스템이 또 한번 방송사고를 일으키면서, 그 심각성이 다시 한번 대두되고 있다.
지난 24일 방송된 tvN '화유기' 2회는 컴퓨터 그래픽(CG) 작업 지연으로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 와이어 줄과 그린 매트 등 아직 완벽히 작업 되지 않은 화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고, 중간 광고도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반복되는 등 역대급 방송사고를 냈다. 
결국 '화유기' 측은 급히 방송을 마무리했고, 이후 "변명의 여지없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공식입장을 밝혔다. tvN 측은 25일 오후 6시 중간 광고 없이 2회를 재편성했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만 존재하는 생방송 제작 시스템은 전 세계를 둘러봐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수하다. 미니시리즈 경우 보통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 초반 1~4회 분량을 찍어놓고 시작한다.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면 그 주에 촬영해, 그 주에 방송을 내보내는 일명 '생방송 시스템'에 돌입한다.
이는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을 파악해 드라마에 반영, 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캐스팅, 편성 등의 이유도 있다. 이로 인해 갑자기 대본이 수정되거나, 내부 갈등으로 제작진이 교체되거나, 뜬금없이 특정 배우가 하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다 보니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최대한 '빨리빨리' 찍어서 방송 시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수면은 턱없이 부족하고, 매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제작 환경 때문에, 어쩌면 방송사고는 정해진 순서일지도 모른다.
지난 2006년 방송된 MBC '늑대'는 촬영 중 주인공 에릭과 한지민이 크게 사고를 당했다. 사인이 맞지 않은 스턴트 차량과 충돌하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생방송 드라마였기에 찍어둔 분량은 없었고, 주연 배우들의 다치면서 4회 만에 조기 종영을 했다.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SBS '시크릿 가든'도 마지막 회에서 차마 제거하지 못한 스태프의 음성이 등장했고, SBS '싸인'에서도 화면조정용 컬러 바가 나오더니 엔딩 일부 장면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SBS '펀치' 역시 잘 나오던 화면이 갑자기 정지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13년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94'도 18회의 편집이 지연돼 테이프 입고가 예정된 방송시간보다 늦어졌다. 방송 도중 오후 10시 10분부터 약 12분가량 방송이 지연됐다.
평소 꼼꼼하고 완벽한 연출로 소문난 장항준 감독도 '싸인'을 만든 후, 살인적인 생방송 시스템의 힘든 점을 언급했다. 그는 한 강연을 통해 "'싸인' 마지막 회가 나갈 때, 한 테이프를 넣으면 뒷 내용이 없었다. 그 내용을 지금 찍고 있었으니까. 전국 각지에서 찍은 것이 방송국으로 모였고, 첫 번째 테이프가 끝나면, 두 번째 테이프를 바로 넣는 식이었다. '싸인' 마지막 방송은 그렇게 테이프를 12번 갈아 끼웠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드라마는 사전제작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촬영 환경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또, 방송사고가 일어나면 이를 지적하고, 문제점을 고치자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그러나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근본적인 고질병인 생방송 시스템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hsjssu@osen.co.kr
[사진] '시크릿 가든' '펀치' '응답하라 1994' '화유기'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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