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즌이 또 저문다. KBO 리그도 지난 13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고 비활동기간에 들어갔다. SK도 11월 일본 가고시마와 인천 및 강화로 나뉘어 마무리훈련을 마쳤다. 수술 후 재활을 진행 중인 네 명의 선수(전유수 한동민 김동엽 김택형)가 구단이 괌에 마련한 재활캠프에서 땀을 흘리고 있고, 나머지 선수들도 휴식과 가벼운 훈련을 병행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한 해였다. 에이스 김광현의 부상 이탈 등 객관적인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에 불구하고 최근 5년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비록 한 경기로 끝나기는 했으나 포스트시즌 무대도 밟았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적인 성적표는 플러스에 좀 더 가까웠다. 올해도 SK의 2017년을 결산하는 10개 부문의 시상을 준비했다. 기자의 주머니 사정이 지난해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상금·트로피 없음)은 양해를 구한다.
올해의 타자 : 최정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고, 구단과 KBO 역대 3루수 홈런 역사를 싹 바꿨다. 더 이상의 설명도 실례다. 지난해에 이어 2연패.
올해의 투수 : 메릴 켈리
시즌 전 “1인자에 욕심이 있다”는 당당한 도전장을 내민 켈리는, 언제든지 자신이 1인자에 오를 자격이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2년 연속 190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점점 더 진화하는 구종과 레퍼토리를 앞세워 탈삼진 타이틀을 따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 중 하나이자, 가장 꾸준한 투수 중 하나였다. 지난해에는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았으나 올해는 야수들의 훈련 도중 배트를 들고 무력시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내년에도 SK에 남아 팀 마운드를 이끈다. 최정과 더불어 역시 2연패.
올해의 헌신 : 박정배
끔찍한 악몽이 이어졌던 SK 불펜이지만, 그래도 분전한 선수들은 있었다. 베테랑 박정배가 후배들을 끌어가며 마지막까지 버텼다. 박정배는 올해 61경기에서 68이닝을 던지며 5승3패7세이브16홀드 평균자책점 3.57의 성적을 내며 고군분투했다. 팀 불펜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였고 ‘마당쇠 마무리’의 전형으로 묵묵하게 자신의 몫을 다 했다. 팀에서 가장 말수가 적은 선수지만, 남긴 기록은 가장 화려했다. SK의 정교한 고과 시스템은 이런 선수를 챙겨주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올해의 새 얼굴 : 정진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군 출전 기록은 24경기밖에 없었다. 이런 정진기를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공·수·주 3박자를 겸비한 외야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는 꾸준했고 올해 그 가능성을 나름대로 인정받았다. 중견수까지 볼 수 있는 수비력을 과시함과 동시에 90경기에서 홈런 11개를 때리며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도 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때린 홈런 두 방은 내년을 앞두고 좋은 징조로 해석될 만하다.
올해의 수비수 : 김성현
비록 타격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시즌 전부터 잔부상에 컨디션을 100% 만들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러나 수비는 여전한 안정감을 과시했다. 지난해부터 2루로 포지션을 옮긴 김성현은 올해 130경기에서 959⅓이닝을 소화하며 단 6개의 실책을 범했다. 수비율은 9할9푼으로 리그 최정상급이었다. 그렇다고 수비 범위가 좁은 것도 아니니 2루 수비에 있어서는 이만한 선수도 별로 없었다. 타격이 반등한다면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2연패.
올해의 기량발전 : 김동엽
김동엽은 데뷔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 57경기에서 타율 3할3푼6리, 6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타격폼 수정 등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었다. 실제 김동엽은 아직 완성형 선수가 아니다.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진화의 와중에서에도 어마어마한 장타력을 뽐냈다. 김동엽은 올해 125경기에서 타율 2할7푼7리, 22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 생애 첫 세 자릿수 안타, 두 자릿수 홈런도 달성했다. 올해의 경험을 토대로 더 발전이 예상된다. SK는 김동엽이 40홈런을 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올해의 재기 : 나주환
어린 선수들과 외국인 내야수들에 밀려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졌던 나주환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뭉친 끝에 다시 팀의 주전 내야수 타이틀을 찾았다. 나주환은 올해 122경기에서 타율 2할9푼1리, 19홈런, 65타점을 기록하며 공·수 모두에서 맹활약했다. 홈런은 오히려 생애 최다 수치이니, ‘회춘’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던 것. KBO에 육성과 리빌딩 바람이 거세게 부는 상황에서 나주환은 베테랑들이 벼랑을 기어오르는 법을 제대로 강의했다.
올해의 2군 선수 : 최항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최항은 어디까지나 “최정의 막내동생”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1년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동등한 야구 선수로 보는 시각이 늘어났다. 올해 활약 때문이다. 1군에서도 인상적인 타격을 선보였고, 2루 전환도 예상보다 빨리 이뤄내는 등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타격 매커니즘은 형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 특히 올해 퓨처스리그 75경기에서는 타율 3할5푼3리, 9홈런, 5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46을 기록하며 팀은 물론 리그 최정상급 성적을 냈다. SK 타자가 2군을 이렇게 폭격한 것도 오래간만이다.
올해의 지도자 : 트레이 힐만 감독
비록 몇몇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올해 SK의 호성적을 이끈 것은 트레이 힐만 감독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선입견 없는 눈과 투지를 강조하는 심장을 모두 가진 이 외국인 지도자는 SK의 체질을 서서히 바꿔 나갔다. 고인 물이 점차 흐르기 시작했고 팀 내 경쟁 구도를 확실하게 정착시켰다. 야구를 즐기고, 야구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보는 선수들이 늘어난 것도 힐만 감독의 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계약 기간의 마지막 해인 내년 성과에도 비상한 관심이 몰린다.
올해의 프런트 : 고객가치혁신그룹
SK의 마케팅, 그 중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행사는 한층 더 진화했다. 아예 올해는 그것만 신경 쓰라고 전담부서까지 만들었다. 별도로 분리된 고객가치혁신그룹은 기존 희망더하기 등 호응을 얻었던 행사들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한편 단순한 야구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관심사를 투영하는 다양한 행사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기획하고 전담한 고객가치혁신그룹에 대한 팀 내부적 평가도 매우 좋았다는 후문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