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는 지금 유격수 대풍이다. 선동렬호가 이를 증명했다.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6일부터 나흘간 일본 도쿄돔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비록 일본에 두 번 모두 지는 등 아쉬움이 많았지만 대표팀의 묵은 숙제였던 세대교체 가능성을 내비친 건 분명한 소득이었다. 만24세 이하 또는 프로 입단 3년차 이하 선수들만 참여하는 대회였기에 투타 모두 젊은 선수들이었다. 선동렬호는 2020 도쿄올림픽까지 내다보며 와일드카드도 쓰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괜찮은 유격수 자원들이 쏟아져 나온 건 분명한 성과였다.
KBO의 분류에 따르면 대표팀은 내야수로 6명을 뒀다. 박민우(NC)와 김하성(넥센), 하주석(한화), 정현(kt), 류지혁(두산), 최원준(KIA)이 그 주인공. 이 중 박민우를 제외하면 모두 소속팀에서 유격수를 주로 맡는 선수들이다. 1루수비가 가능한 구자욱(삼성)을 내야수로 포함하더라도 7명 중 5명이 유격수 자원이었던 셈이다.
대회 내내 대표팀의 붙박이 유격수는 김하성이었다. 김하성은 국내에서 치른 세 차례 연습경기는 물론 본선 세 경기까지 줄곧 4번타자 겸 유격수를 도맡았다. 성적도 3경기서 11타수 3안타(.273), 1홈런, 1타점, 3득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장타 기근에 시달렸던 대표팀이지만 김하성의 한 방만큼은 확실했다.
김하성이 고정되며 남은 유격수 자원이 다른 포지션을 나눠먹는 분위기였다. 정현이 붙박이로 '핫코너'를 맡았으며 류지혁은 대수비로 뒤를 받쳤다. 정현이나 류지혁 모두 2루와 3루 소화가 가능하지만 대표팀의 주전 2루수는 박민우가 굳건했다. 때문에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현은 특유의 선구안과 안정적인 수비를 뽐냈으며, 류지혁은 일본과 예선전 연장 승부치기서 속 시원한 1타점 2루타를 때려냈다.
하주석은 아예 1루로 나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격수 하주석'은 실책이 잦았다. 그러나 올해 환골탈태하며 팀의 주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비록 일본전서 1루 수비가 낯선 탓에 실수를 범했지만 타석에서는 제 역할을 다했다. 내야와 외야 모두 소화 가능한 최원준 역시 지명타자로 나섰지만, 유사시에는 유격수 출장이 가능했다.
이처럼 언제든 투입가능한 유격수가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만 5명이었다. 이들 모두 와일드카드가 아닌, 만24세 이하 어린 선수들.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10년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이들이다.
비단 APBC 대표팀만이 아니다. 올 시즌 타격왕은 유격수 김선빈(KIA)이었다. 주 포지션이 유격수인 선수가 타격왕에 오른 건 1994년 이종범 이후 김선빈이 처음이었다. 김선빈은 올해 만 28세의 선수다. 앞으로 수년간은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군림할 전망이다. 김선빈이 중심을 잡고 있는 형국에 APBC 대표팀에서 뛰었던 영건들이 도전장을 내미는 모양새다.
10년 전, 한국 대표팀의 주전 유격수는 고민 없이 박진만이었다. 박진만은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을 수비력으로 대표팀 내야 깊이를 더했다. 박진만이 은퇴한 뒤에는 박기혁과 손시헌도 태극마크를 달고 주전 유격수를 맡았다. 이후에는 강정호의 시대였다. 유격수로서 안정적인 건 물론 중심타선 소화가 가능한 강정호는 한국 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강정호의 뒤는 김상수가 받쳤다. 이들은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누볐다.
하지만 강정호가 연이은 음주운전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며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김상수도 잦은 부상으로 고전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오지환의 성장세는 더디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괜찮은 유격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고, 그 경쟁력을 대표팀에서 입증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듬해 아시안게임이나 3년 뒤 올림픽까지 좋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선택지가 넓어진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ing@osen.co.kr
[사진 위] 김하성-류지혁-정현-하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