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 이제 더이상 물러날 곳 없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kt 외야수 하준호 이야기다.
하준호는 올 시즌 101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2푼4리, 3홈런, 18타점, 31득점을 기록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고지를 넘어섰다. 하지만 타석 수는 오히려 줄었다. 2015시즌, 80경기에 나설 때 279타석에 들어섰으나 올 시즌 226타석. 이는 선발출장한 경기(48경기)보다 그렇지 않은 경기(53경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김진욱 감독은 올 시즌 초반, 주전 중견수로 하준호를 낙점했다. 하지만 3~4월 성적(타율 .103)이 워낙 안 좋았다. 결국 다시 백업 신세로 돌아섰고, 선발출장보다 대타나 대수비로 나서는 때가 더 많아졌다.
하준호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서 담금질에 한창이다. 자타공인 캠프 분위기메이커이지만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하준호는 "유명하지도 않고, 잘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입을 열었다.
그가 꼽은 올 시즌 실패 이유는 '착오'였다. 하준호는 "시범경기부터 눈도장을 찍고 싶었다. 주전이 아니니까 캠프와 시범경기 때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췄고, 4월이 되면서 무너진 것 같다"고 후회했다. '주전 중견수' 소리를 들으며 시즌을 시작했으나, 4월 중순부터 백업으로 나서는 경기가 많아졌다. 그는 "아무도 나를 신경 안 쓰는데 나 혼자 무너졌다"고 반성했다.
결국 변화를 택했다. 하준호는 "형들을 보며 느낀 게 많다. 경험 많은 형들은 대개 5~6월에 초점을 맞춰서 몸을 만든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이다"고 밝혔다. 냉정히 말해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려놓은 하준호다. kt는 2018시즌 주전 중견수 멜 로하스를 축으로 우익수 유한준 체제를 구축했다. 남은 자리는 좌익수 하나. 이를 두고 하준호는 물론 김동욱, 전민수, 오정복, 오태곤에 이듬해 합류하는 '대형신인' 강백호까지 다투는 형국이다.
하준호는 "캠프 때 아무리 잘해도 시즌 때 못하면 허사다. 백업으로 시작해도 시즌 치르면 한두 번쯤 기회가 온다. 그때 준비가 돼있으면 다르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김진욱 감독이 꼽은 하준호의 문제는 자신감이다. 이를 알 수 있는 사건 하나. 하준호는 늘 몸쪽 공에 약점을 드러냈다. 어느 날 김진욱 감독이 "다른 거 보지 말고 초구부터 몸쪽만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하준호가 별 생각 없이 몸쪽 공을 받아쳤을 때, 결과는 2루타였다. 김 감독이 "봐라. 치면 칠 수 있지 않나"고 묻자 하준호는 "감독님이 치라니까 친 겁니다"고 답했다. 김진욱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가 4연타석 홈런 치라면 칠 수 있나"고 답했다고.
김 감독은 "준호는 활용도가 다양하다. 자신감만 찾는다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텐데 그 점이 아쉽다"고 답답해했다. 하준호도 "내 스스로 너무 높게 봤다. 한 번 못했을 때 실망도 컸다"라며 "어깨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올 시즌, 하준호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유한준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빠지며 대타로 나선 상황. 그의 이름이 소개되고 타석에 들어서자, 한 관중이 "아, 뭐냐. 왜 쟤가 나오냐"라고 야유했다. 하준호도 이를 정확히 들었다. 그는 "야구하면서 그런 야유 들은 게 처음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내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팬들께서도 그런 말씀하시는 게 당연하다"라며 "어떤 야유가 나오더라도 할 말 없다. 결국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더는 남 눈치 보지 않고 '하준호의 야구'를 하고 싶다는 그. 2018시즌 배수진을 치고 덤비는 그의 모습을 주목해보자.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