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한다] '천신만고' 삼수 끝에 지휘봉 잡은 한용덕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7.11.04 07: 35

"어차피 한화 감독은 한용덕?"
지난달 3일 정규시즌 종료 후 27일간 한화 사령탑은 공석이었다. 여러 소문들이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야구계 모든 시선은 단 한 사람에게 향했다. 한용덕(52) 두산 수석코치. 이미 '친정팀' 한화에서 두 차례나 감독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정설로 굳어졌다. 이는 사실이었다. 한화는 내부적으로 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린 지난달 21일 한용덕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
당시 교육리그 참관차 일본 미야자키에 머물던 박종훈 단장이 한용덕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정 사실을 알렸다. 이때부터 한용덕 감독의 행동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워졌다. 평소 미디어에 친절하기로 유명한 한 감독이었지만 한국시리즈 기간에는 말을 아꼈다. 두산 선수단과 관계자들도 내정설에 궁금증을 나타냈지만 한 감독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날 두산 코칭스태프와 '이별주'를 할 때도 안심하지 못했다. 다음날 오전 박종훈 단장을 만나 계약서에 최종 사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 한 감독은 "시리즈가 끝나고 다음날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까지 조심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두 차례나 감독 최종 후보에서 낙마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감독이 감독으로서 야망이 생긴 건 지난 2012년 8월. 한대화 감독이 중도 퇴진하며 수석코치였던 한 감독에게 임시 지휘봉이 넘겨졌다. 당시 한화에는 이미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가 있었지만 한용덕 감독대행이 기대이상 성적을 내며 경쟁구도가 붙었다. 여기에 한창 주가를 높이던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까지 있었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과 접촉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팬들의 비난이 봇물쳤다. 한용덕 감독대행이 선전했지만 더 강력한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김응룡 감독 카드. 구단에선 한용덕 대행의 내부 승격을 내세웠지만 그룹은 김성근 감독 이상 인물을 원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10회에 빛나는 최고의 명장 김응룡 감독 복귀로 한 감독의 승격은 무산됐다.
한 감독은 이듬해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연수를 다녀온 뒤 단장특별보좌역으로 프런트 임무를 맡았다. 당시 한화 수뇌부는 일찌감치 한 감독을 차기 사령탑 후보로 낙점했다. 김응룡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2년 계약기간을 채우면서 팀을 떠났고, 구단은 다시 한용덕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감독 승격이 유력했지만, 팬심이 깜짝 변수로 작용했다. 최고의 주가를 높인 김성근 감독이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선임된 것이다.
구단 수뇌부들은 "옷벗을 각오로 한용덕 감독을 만들겠다"며 열을 냈지만 "김성근 감독 아니면 안 된다"며 들고 일어선 팬심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최종 후보에서 낙마한 한 감독은 28년간 몸담았던 독수리 울타리를 떠났다. 그게 3년 전 가을의 일이다. 두산에서 3년간 수석 겸 투수코치로 외부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돌고 돌아 결국 친정팀 감독으로 금의환향했다.
한화의 감독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서 한 감독도 처신을 조심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 감독은 "기자분들이 다들 눈빛으로 말씀하시더라"며 웃은 뒤 "이전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마지막에 되지 않았다. 만약 (포스트시즌 기간 중) 기사가 먼저 나왔다면 일이 잘못돼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기자분들이 배려를 해줬고, 덕분에 계약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돌고 돌아 삼수 끝에 감독 자리에 오른 한용덕. 5년 전, 아니면 3년 전 일찌감치 감독이 될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특별하다. 고생 끝에 맺은 열매라 지난날의 아픔도 눈녹듯 씻겨졌다. 오히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지도자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연수를 통해 미국 야구를 경험하고, 프런트로 구단 업무를 맡아 야구 전반에 시야를 넓혔다. 두산으로 가서는 외부에서 한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용덕 감독은 "5년 전에 바로 감독이 됐다면 아마도 일찍 그만뒀을 것이다. 그때는 혈기왕성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자제력을 많이 키웠다. 두산에서 여러 가지로 많은 경험을 한 게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두 번의 감독 낙마로 인한 시련이 앞으로 감독 인생에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waw@osen.co.kr
[사진] 한화 감독 취임식 날(위), 2012년 한화 감독대행 시절(중간), 두산 수석코치 시절(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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