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보다는 시스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이 위기의 한국 축구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편 김호곤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이 기술위원장과 부회장 자리서 사의를 표했다. 한국 축구의 대격변의 시기가 오고 있다.
현장을 떠났지만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2일 오전 10시 용산 하얏트호텔서 ‘분데스리가 레전드 투어 IN 코리아’에서 참석해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차 전 감독은 최근 한국 축구가 빠진 미증유의 위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가 내린 진단은 명확했다. 한국 축구가 위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영웅보다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날 차 전 감독은 이웃나라 중국-일본과 비교를 통해 시스템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한국 축구와 달리 중국과 일본 축구는 급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 투자로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세계 유수의 축구 강국을 가리지 않고 스타 선수와 지도자를 영입했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는 클럽에서 그치지 않고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며 국가 대표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세계축구연맹(FIFA) 국가랭킹서 중국은 최초로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위치하며 상승세를 증명했다.
일본 역시 꾸준하게 시도한 선진 시스템 구축의 결실을 맺고 있다. 유럽 무대에 여러 선수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클럽 문화가 자리잡았다. 차 전 감독은 “중국 같은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하며 일본식 선진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 전 감독은 “과거 일본 축구계의 선진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 대표팀 성적으로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축구계의 투자는 결국 결실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과거부터 어린이 축구 교실은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표팀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결국 축구협회와 신태용호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여기다 노제호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이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설을 제기하면서 한국 축구를 뒤흔들고 있다. 차 전 감독은 한국 축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히딩크 감독 부임으로 급한 불을 끄기보다는 선진 시스템 구축을 통한 지도자와 선수 육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차 전 감독은 독일 축구를 한국 축구의 롤 모델로 제시했다. 독일 축구 역시 2000년 벨기에과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 예선 탈락하며 위기에 빠진 바 있다. 독일 축구계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 한 마음으로 전면 개혁에 나서 14년 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일궈냈다.
분데스리가 홍보 담당관 모리스 조지는 “2000년 당시 독일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30살이었고 분데스리가 팀 대부분에는 외국인 선수가 차지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유소년 아카데미 투자와 지도자 육성에 나섰다. 이러한 위기 극복 노하우를 한국에 전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차 전 감독은 “독일 축구는 유소년 육성과 동시에 자국 지도자 육성에 많이 투자했다. 한국에도 축구를 사랑하고 배우고 싶은 지도자는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고”고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 대표팀은 2006년 요아힘 뢰브 감독이 부임한 이래 꾸준하게 대표팀을 이끌어 다시 축구 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뢰브 감독 뿐만 아니라 토머스 투헬, 율리안 니겔스만 등 젊고 유망한 지도자들이 분데스리가에서 자리잡으며 리그 경쟁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뢰브 감독을 요기라는 애칭으로 부른 차 전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이 지도자 자격증 수업 도중 요기의 스리백 관련 발표를 듣고 감탄해서 그를 코치로 데려갔다고 얘기해줬다”라고 하며 “우리도 요기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지도자를 세계 축구의 흐름과 호흡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차 전 감독은 “이제 2002년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와야 한다. 꿈 같았던 기억은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을 이루기 위해 바뀌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2000년 독일처럼 필연적으로 변해야만 한다”고 축구계 모두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히딩크논란’의 당사자 중 한 명인 김호곤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KFA는 최대한 빨리 후임 기술위원장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2000년의 독일처럼 2017년 한국 축구에 개혁의 시기가 찾아왔다. 이미 위기에 몰린 한국 축구를 위해서 과감한 변화가 요구된다. /mcad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