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우승' 드디어 만개한 이범호 향한 헌화가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11.02 15: 00

꽃이 드디어 환하게 폈다. '꽃범호'는 세상 가장 밝은 웃음으로 그라운드에 만개했다.
2000년 한화에서 데뷔한 이범호는 2010년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거친 뒤 2011년부터 KIA 유니폼을 입었다. 올해까지 통산 1881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7푼1리, 308홈런, 1053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도중 길었던 아홉수에서 탈출하며 300홈런 고지에도 올라섰던 그다. 통산 만루홈런 16개로 이 부문 압도적 1위에 올라있는 이범호였다.
하지만 우승 반지와는 유달리 인연이 없었다. 이범호는 한화 시절이던 2006년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치른 경험이 있었다. 6경기서 타율 2할3푼1리. 타점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채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 기회가 찾아왔다. KIA는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KIA에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경험한 선수가 많지 않았다. 야수로 범위를 좁히면 나지완, 안치홍(이상 2009년), 유재신(2014년 넥센), 최형우(2010~2015년 삼성)가 전부였다. 이 중 대주자 출전이 전부였던 유재신을 제외하면 세 명뿐이었다. 그나마도 나지완과 안치홍은 8년 전 이야기였다. 때문에 '베테랑' 이범호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개인적으로도 당시 쓴잔을 만회할 기회였다.
선수 생활이 황혼기로 접어든 탓일까. 이범호 본인도 절실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범호는 "은퇴하는 선배들을 보며 가슴이 찡하다. 나도 2~3년 뒤에는 그라운드에 없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은퇴 전에 우승 기회를 잡은 것도 참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감사에 머물 이범호가 아니었다.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각오 역시 함께였다. 후배 김선빈이 오히려 "범호 형이 제일 간절한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
막상 뚜껑을 열자 부진이 거듭됐다. 이범호는 3차전까지 11타석 9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중심과 하위타선을 오갔지만 볼넷 두 개만을 골라냈을 뿐이었다. 김기태 KIA 감독의 믿음은 굳건했다. 김 감독은 4차전에 앞서 "앞선 3경기는 지나간 것이다. 오늘 다시 4타석을 투자하는 셈이다. 이범호는 3차전서 결정적인 볼넷을 골랐다. 잘해주리라 믿는다"라고 밝혔다. 동행 야구 그대로였다.
마음의 짐이 상당했을 이범호다. 4차전 4회 삼진을 당할 때는 평소와 달리 스트라이크존 판정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세 번째 타석에서 중전 안타를 때려내며 긴 침묵에서 벗어났다. 4차전 때려낸 안타는 5차전 결정타의 신호탄이었다. 이범호는 5차전서도 굳건히 7번타자 겸 3루수로 선발출장했다. 2회 1사 1루서 맞은 첫 타석은 중견수 플라이. 볼카운트 1S에서 2구를 노렸지만 두산 선발 니퍼트의 힘에 밀렸다.
이범호가 힘을 발휘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범호는 팀이 1-0으로 앞선 4회 2사 만루서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로저 버나디나의 적시타로 한 점 앞선 상황이었지만 1사 만루에서 안치홍이 삼진으로 물러난 뒤였다. 한 점 차 리드는 승리를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이범호가 여기서 니퍼트의 초구 슬라이더(129km)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바깥쪽 높게 제구된 슬라이더를 제대로 잡아당겨 담장 밖으로 내보냈다. '만루포의 사나이' 이범호의 데뷔 첫 포스트시즌 만루홈런이었다.
KIA는 경기 막판 거센 추격을 허용하고도 마침내 7-6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이범호는 "너무 오래 걸린 우승이다. 한 번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간절한 적이 없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담도 상당했다. 이범호는 "4차전 종료 후 가위에 눌렸다. 귀신이 몸에 들어와 홈런을 하나 준 것 같다. 우승을 한 번도 못했는데 하늘도 불쌍히 여긴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느낀 심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던 장면이었다.
이범호는 우승 세리머니에서 다소 난해한(?) 몸동작으로 '댄스 세리머니'에 나섰다. 아무렴 어떨까. 8년 만에 우승을 맛본 KIA 팬들의 환희, 생애 첫 우승을 경험한 이범호의 행복은 그 춤사위로 폄하할 수 없다. 이범호는 김주찬에게 '캡틴' 자리를 양보했지만 더그아웃 리더 역할은 여전했다. 단순히 타율이나 홈런 수로 이범호의 올해를 평가할 수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다른 꽃들이 한창 화려히 피어오를 때 이범호는 잠잠했다. 이제 그 꽃들이 차츰 빛을 잃는 가을이 됐다. 이범호는 이제야 만개했다. 늦게 폈지만 적어도 올 겨울, 가장 아름다운 꽃은 이범호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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