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의 승부수와 양현종 MVP 탄생의 비화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7.10.31 11: 00

"9회에 나갈 수도 있다".
2017 한국시리즈는 KIA 에이스 양현종을 위한 대관식이나 다름없었다. 생애 첫 20승 투수와 100승을 따내며 이미 정규리그에서 대한민국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3주의 재충전 시간을 갖고 맞이한 한국시리즈는 양현종이라는 투수의 품격을 격상시킨 무대가 되었다. 
양현종은 2차전에서 1-0 완봉승을 따냈다. KIA는 몸이 풀리지 않아 1차전을 패하면서 힘겹게 출발했다. 만일 양현종마저 경기를 내준다면 시리즈는 두산의 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양현종은 122개의 볼을 던지며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한국시리즈 최초의 1-0 완봉승이었다. 

유격수 김선빈은 우승 직후 양현종의 완봉승이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팀이 1차전에 지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현종 선배가 2차전을 잡아주어 다시 분위기가 살아났다. 선수들이 모두 다시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양현종의 1-0 완봉승 나비효과는 컸다. 잠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팻딘이 3차전 7이닝 3실점 역투로 2연승을 낚았다. 이어 임기영이 4차전에서 5⅔이닝 무실점 호투로 3연승을 낚았다. 이제 분위기는 KIA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양현종은 6차전 선발투수로 내정되어 있었다.
헥터가 5차전에서 호투하고 팀이 이기면 양현종의 두 번째 등판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양현종은 5차전의 마지막 투수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김기태 감독은 경기에서 리드를 잡는다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가장 강한 양현종에게 경기를 끝내게 하도록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MVP는 애매했다. 로저 버나디나가 초반부터 결승타 포함 2안타를 터트리며 사실상 MVP를 예약을 했다. 선발 헥터는 6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했고 7-0으로 크게 리드하고 있었다. 마지막 이닝을 책임지더라도 양현종의 MVP는 어려웠다. 그런데 헥터가 7회말 4연속 안타와 사구를 내주고 5실점하는 대반전이 생겼다. 
김기태 감독은 소방수 김세현을 조기에 투입했다. 3연투에 나선 김세현은 안타를 맞았지만 힘겹게 7-6 한점차 리드를 지켰다. 그리고 8회말 선두타자 국해성에게 안타를 맞자 김윤동을 마운드에 올렸다.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김윤동은 위력적인 볼을 앞세워 삼진-삼진-우익수 파울플라이로 막아 두산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양현종은 8회가 시작되자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김기태 감독은 불펜포수를 통해 양현종의 구위를 체크했다. 2차전에서 122구를 던져 어깨상태가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괜찮다"는 사인을 받자 9회말 양현종을 마운드에 올렸다. 양현종이 등장하자 KIA쪽 응원석은 들썩였다. 
한 점차의 살떨리는 상황에서 생애 첫 마무리 투수로 나섰다. 선두타자 김재환을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순간 두산 응원석에서 뜨거운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양현종은 오재일은 좌익수 뜬공으로 잡고 한숨을 돌리는 듯 싶었다. 그러나 조수행의 번트타구를 3루수 김주형이 1루 악송구를 범해 1사 2,3루 역전 위기가 찾아왔다. 시리즈 사상 가장 긴박했던 순간이었다.
양현종은 거짓말처럼 냉정해졌다. 허경민을 고의 볼넷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가장 자신있는 직구로 승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혼을 실은 직구를 연거푸 던져 박세혁은 유격수 뜬공, 마지막 타자 김재호는 포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팀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양현종은 또 한 명의 선수를 구했다. 악송구를 했던 김주형이었다. 김주형은 경기후 "이민 갈 뻔 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자단은 MVP 투표 시간을 미루었다. 통상적으로 8회를 마치고 MVP 투표를 한다. 그러나 8회 양현종이 불펜에서 몸을 풀자 9회 등판 결과를 보고 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양현종은 생애 최초의 빅세이브를 따냈고 기자단은 74표 가운데 48표를 던져 양현종의 생애 첫 MVP를 결정했다. 결국 양현종을 위한 시나리오나 다름없었다.  
김기태 감독이 양현종을 기용한 것은 지독한 승부수였다. 만일 양현종이 무너졌다면 KIA의 남은 시리즈는 꼬일 수 있었다. 경험이 많은 두산 선수들에게 반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6차전은 KIA에 강한 장원준이 대기하고 있어 승리가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6차전이 아닌 5차전에서 끝낼 생각으로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양현종 카드에 대한 실패 대안도 마련했다. 김 감독은 "현종이가 1점을 내주었다면 그대로 끝까지 책임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6차전 선발투수로 팻딘을 내세우고 양현종을 1+1로 묶을 생각까지 했다. 결국 이렇게해서 이겼다"고 말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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