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무지와 방심, 어린 유망주에 찾아온 비극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0.28 05: 56

사정은 딱하지만, 100% 구제는 되지 못했다. 징계를 내린 쪽도, 징계를 받은 쪽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피부병 치료를 위한 한약이 전도유망한 내야수인 임석진(20·SK)의 이름 앞에 불명예를 붙였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내막은 잘 공유할 필요가 있다.
KBO(총재 구본능)는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어제(26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부터 SK와이번스 임석진 선수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발표했다. 임석진은 지난 8월 22일 도핑테스트 당시 금지약물로 규정된 에페드린 성분이 검출됐다. 이에 36경기 출전 정지라는 비교적 무거운 징계가 확정됐다. 이는 내년 시즌 시작부터 적용된다.
KBO는 도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징계 수위를 높였다. 원래대로라면 1군 기준 한 시즌의 절반인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임석진은 절반 수준인 50%가 감경됐다. 이유가 있었다. 고의성이 없다는 것이 소명됐기 때문이다. 진료는 해당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졌고, 임석진 스스로도 방심한 나머지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다.

의료진의 치명적 실수, 도핑에 무지했다
발단은 여드름 치료를 위한 한약이었다. 임석진은 만성적인 화농성 여드름이 있었다. 미용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여드름이 얼굴 전체에 퍼지다보니 경기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선수의 스트레스가 컸다. 때문에 치료를 결심했다.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한의원을 찾았다. 다만 최초 진단시 자신이 언제든지 도핑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야구선수 신분임을 고지했다. 한의원 측도 이를 고려해 처방을 했다. 첫 처방은 3월 21일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월 1~2회 정도 통원 치료를 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그러나 한약을 다 먹은 뒤로 다시 상태가 안 좋아졌다. 재처방을 받았다. 5월이었다. 그런데 당시 임석진은 오른손 검지 골절로 경기에 나서지 않던 중이었다. 여기서 담당 의사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경기에 나가지 않고 있으니 도핑테스트를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1차 처방 당시에 뺐던 마황 성분이 포함된 한약을 처방해 건넸다.
이에 대해 해당 한의원은 “운동선수임을 인지했고 (도핑 문제 때문에) 초기에는 마황,반하 등이 포함되지 않은 한약을 처방했다”라면서도 “호전 증세를 보였으나 두피와 안면부에 지속적으로 구진이 발상해 처방 변경을 고려했다. 이에 당시 증상 및 평소 열감이 있고 찬물을 선호하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임을 고려해 열성 피부질환에 두루 쓰이는 방풍통성산을 처방했다”고 설명했다.
1차 처방을 받은 도화탕합황련해독탕에 비해 방풍통성산은 피부 표면에 울체되어 있는 열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황이 첩당 2~3g 정도로 소량 사용된다. 그러나 흥분이나 각성 등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해당 한의원은 “피부증상 치료에 적합한 약이고, 피부염에 루틴하게 사용하는 처방이다. 여기에 마황은 보조적인 작용을 하는 약재라 미처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투약했다”고 해명했다.
1차 때와 맛과 색이 다르다는 것은 임석진 스스로도 느낄 법 했다. 그러나 1차 처방 당시 도핑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고, 병원 측에서도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 아무 의심 없이 복용했다. 이런 임석진은 계속 한약을 먹었고, 결국 8월 도핑테스트에 적발됐다. 선수는 적발 순간까지도 한약에 대한 의심을 해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딱하지만..." 평생 남을 꼬리표
마황은 다이어트 등 많은 용도에서 쓴다. 피부병 치료를 위해서도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마인이나 여송과처럼 금지성분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즌 중 선수들에게는 처방하지 않는다. 또한 한약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금지약물 성분 포함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에페드린’이라는 단어가 처방전에 있었다면 잘 몰라도 한 번쯤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마황’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한 트레이너는 “이와 같은 사례 때문에 선수들에게 한약 복용을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한약에도 10가지가 넘는 적발 대상이 있다. 이 중 마황에는 각성효과가 있는 에페드린 성분이 있다. 다른 금지약물에 대해 반감기가 짧은 편인데 선수가 모르고 계속 한약을 복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풀이하면서도 “하지만 비시즌이 아닌 시즌에 적발된 것은 엄연한 징계 대상이다. 조금은 안타까운 케이스”라고 했다.
임석진과 SK는 해당 한의원과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고 한의원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에 따라 SK는 진단서와 소견서를 받아 지난 10월 11일 KADA에 소명했다. 해당 한의사는 “결론적으로 검출된 에페드린은 본원에서 처방한 한약인 방풍통성산에 들어있는 마황에서 유래했을 확률이 높다. 이는 피부치료를 목적으로 처방한 약이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선수 측에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병원 측의 실수를 인정하니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KADA 측에 소견서를 제출했다.
KADA도 이런 소명을 받아들여 징계를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하지만 어쨌든 시즌 중 에페드린이 검출된 것은 명백한 징계 사유다. 한 관계자는 “KADA도 전후 사정은 인정하지만 검출이 된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SK도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벌금 1000만 원을 낸다. 무엇보다 임석진에게는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다. 사정이 참작은 됐지만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 다들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스토리도 잊힐 가능성이 있다.
임석진 “부주의 인정”, 반면교사 되어야
임석진은 이번 사태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석진은 어린 나이에도 점잖고 사려가 깊어 잠재력은 물론 인성적인 측면에서도 코칭스태프의 높은 평가를 받는 1라운드 출신 유망주다. 도핑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가 최악이었다. 약물에 대해 민감한 현 시점에서도 많은 팬들이 동정할 정도니 선수 스스로가 느끼는 억울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임석진도 시즌 중 여드름 치료를 시작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내 잘못이고 부주의를 인정한다”는 생각이다. 2차 처방 당시에도 더 의심을 해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쨌든 자신의 몸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다. 억울한 심정은 있지만 자신의 부주의도 있었던 만큼 변명은 하지 않고 징계를 받아들인다는 생각이다.
구단은 당혹스럽다. SK는 “지속적인 선수단 교육 및 관리 강화를 통해 향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일단 해당 병원의 잘못이 큰 만큼 현 시점에서 선수에 대한 자체 징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팀이 기대하는 유망주 선수에게 나쁜 이미지가 생길까 노심초사다. 일각에서는 “고소를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승소해 징계가 철회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별다른 실익도 없다. 고려하지는 않는 시나리오로 알려졌다.
야구계에서는 “불시에 도핑테스트를 하면 걸리는 일반인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먹는 약에도 금지약물 성분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일반인과 운동선수는 다르다. 도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각 구단별로 대대적인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실제 선수들도 이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진다. 감기약 같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더 신중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프로 운동선수는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만 20세의 어린 선수는 그 과정에서 딱 한 번의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위협인 만큼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가을의 스크랩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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