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전율의 완봉쇼’ 양현종, 이제는 타이거즈의 심장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0.27 13: 00

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럴까. 선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코치들도 굳이 인위적인 긴장감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밝고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애썼다.
이처럼 웃음 속에 한국시리즈 준비에 들어간 KIA였지만, 그 와중에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가 있었다. 외야 끝에서 외야 끝까지, 홀로 몇 번을 왕복했다. 투수 수비 훈련 때도 시종일관 진지했다. 코치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훈련 프로그램을 조율하기도 했다. 어엿한 리더였다. 양현종(29·KIA)은 그렇게 자신과 팀을 다잡으며 한국시리즈에 대비하고 있었다.
25일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3-5로 진 KIA였다.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저조했다. 게다가 2차전 선발은 KIA에 아주 강했던 장원준이었다. 긴장감이 절로 흘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한국시리즈 무대를 고대해온 양현종은 떨지 않았다. 오히려 팀의 혼을 깨우는 피칭으로 2차전 한 경기를 오롯이 책임졌다. 9이닝 122구 11탈삼진 완봉승. 양현종의 포스트시즌 첫 승은 눈부시게 화려했다.

시작부터 작정하고 공을 던지는 듯 했다. 140㎞대 중·후반의 빠른 공들이 두산 타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우타자 몸쪽으로 비교적 후했던 스트라이크존을 십분 활용하는 제구력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처지기는커녕, 몇 차례의 위기를 정리하면서 더 강해졌다. 게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정면승부였다. 122구 중 빠른 공이 무려 80개였다. 하지만 감이 좋았던 두산 타자들도 사력을 다한 양현종의 빠른 공에 끝까지 대처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통산 10번째 완봉승은 그렇게 완성됐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는 문희수 이강철 로페즈 이후 네 번째다. 길이 남을 기억이다. 양현종은 그간 포스트시즌 무대에서의 활약이 많지 않았다. 경력 초반에는 잘 던진 경기가 많지 않았고, 궤도에 완전히 오른 뒤로는 팀이 가을야구에 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 이어 이날도 호투하며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웠다.
몇몇 모습에서는 ‘에이스’ 이상의 면모도 보였다. 엄청난 각오에서 나오는 기백이 있었다. 자신이 꺾이면 팀이 꺾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득점 지원이 거의 없는 외로운 상황에서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다. 8회가 끝난 뒤, 덕아웃으로 들어오던 양현종은 팬들을 향해 크게 손짓했다. 그 제스처 하나는 많은 것을 바꿨다. 어려운 와중에서도 경기장은 순식간에 “한 번 해보자”는 의지로 가득 찼다.
양현종은 정규시즌에서만 107승을 거둔 KIA의 에이스다. KIA를 거쳐 간 그 어떤 왼손 투수보다 많은 승리를 따냈다. 현재로서는 이강철의 152승에 도전할 만한 유일한 투수다. 지금도 가지는 상징성이 만만치 않다. 이제는 2년 선배이자 양현종에 앞서 ‘에이스’의 호칭을 가졌던 윤석민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 성적이 좋다고 해서 팀의 심장이나 시리즈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더 플러스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현종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그 ‘뭔가’를 채우고 있음을 과시했다. 물론 그에 비례해 부담감은 더 커지겠지만, 지금의 양현종이라면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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