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원준의 등장은 그야말로 ‘혜성 같이 등장한 스타’ 그 자체였다. 배우라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외모에 원조 ‘꽃미남’ 수식어를 얻고, 스스로 작사작곡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실력까지 갖췄다. 이제는 아빠이자 교수로서의 삶도 병행하고 있는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르다.
지난 1992년 ‘모두 잠든 후에’로 데뷔한 김원준은 데뷔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의 인기를 단번에 끌어올린 한 방은 패러디 극장을 통해서다. 당시 이영자와 함께 영화 ‘보디가드’를 패러디했는데, 거짓말처럼 그 다음 날 집 앞에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다음주 바로 가요프로 1위에 오를 만큼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쇼’, ‘너 없는 동안’, ‘세상은 나에게’, ‘가까이’, ‘얄개시대’ 등 다양한 히트곡을 남기며 90년대를 호령한 꽃미남 가수.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샀다. 그러던 중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을 통해 복귀했고, 특히 ‘무한도전’에서는 냉동인간으로 불리며 친근한 이미지를 다시금 쌓아갔다.
15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그 사이 공백기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는 김원준의 모습이 담겼다.
이날 김원준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겠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대 길도 있지 않나. 2000년대 초반부터 공백 아닌 공백이 생겼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방송활동을 거의 안 했다”고 운을 띄웠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음악기기들을 모아놓은 작업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녹음실을 차렸지만, 부도가 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빚이 생겼다. 김원준은 “안 겪어본 거니까 숨이 턱턱 막혔다. 은행 갔더니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옛날 안 하던 매니저들한테 전화해서 행사를 해야겠다고 하니까 ‘너 떠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연락하냐’고 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쇼’를 수없이 불러봤지만 그때 한 대형마트 행사 당시 사은품의 인기에도 밀렸던 무대를 회상한 김원준. 선글라스를 벗는 퍼포먼스도 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불렀다고 전했다.
그런 시련과 아픔이 있었기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그 후 택한 것이 교수로서의 삶. 현재까지 강동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이자 교수로서 재직 중. 14살 연하 미모의 아내를 만나 딸 예은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김원준이다. / besodam@osen.co.kr
[사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