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NC 감독은 시즌 중 건강 문제로 잠시 감독실을 비웠다. 뇌하수체 선종으로 급체에 어지러움까지 겹쳤다. 10년이 넘는 감독 생활이 가져다 준 스트레스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른 후배 감독들도 안타까움을 표시했지만, 가장 놀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트레이 힐만 SK 감독이었다. 힐만 감독은 “김경문 NC 감독이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감독님을 위해 기도하고 하고 싶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외국인’인 힐만 감독을 가장 반긴 사령탑이었다. 힐만 감독도 “모든 감독들이 다 친절하게 나를 대해줬지만, 특히 김 감독이 가장 상냥하게 대해줬다”고 인연을 설명했다. 김 감독도 현장 복귀 후 힐만 감독에 대해 감사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두 감독 사이의 흐르는 기류는 ‘존중’이다. 힐만 감독은 KBO 리그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김 감독의 경력에 찬사를 보낸다. 김 감독도 마찬가지다. KBO 리그보다 더 큰 무대인 미국과 일본에서 모두 감독 경력이 있는 힐만 감독의 이력을 한국 지도자들이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감독의 입원 당시 에피소드는 두 감독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으로 만난다. 개인적인 존중은 존중이지만, 또 승부는 승부다.
NC와 SK는 5일 마산구장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을 벌인다. ‘진짜 가을무대’로 가기 위한 한 판 승부다. 유리한 쪽은 역시 NC다. 두 경기 중 한 경기에서 패하지만 않으면 준플레이오프로 갈 수 있다. 확률적으로 좋은 승부다. 그러나 시즌 막판 역전극을 벌이며 5위에 안착한 SK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상황상 NC보다 더 차분하게 이날 경기에 대비했다. 에이스 메릴 켈리를 앞세워 승부를 2차전으로 끌고 가려 한다. SK의 목표도 공히 부산행이다.
두 감독에게도 중요한 한 판이다. 김경문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KBO 리그 최고의 감독 중 하나다.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가장 잘 잡아낸 사령탑으로도 뽑힌다. 10년이 넘는 세월에서 항상 정상과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는 점은 아픈 대목이다. SK가 김 감독을 막아선 해도 있었다.
김 감독은 두산 감독 재직 시절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SK와 만났으나 소득이 없었다. 2007년과 2008년은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SK를 넘지 못했다. 2009년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다시 SK의 벽에 막혔다. 2009년 이후 SK와는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만난다. 그 당시 SK와 지금 SK는 많이 다른 팀임이 분명하지만, 넘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힐만 감독은 자신의 단기전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힐만 감독은 부임 첫 해인 올 시즌 SK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으로 뚝심을 발휘한 끝에 팀의 5위를 이끌었다. 하지만 단기전 승부는 이번 무대가 데뷔전이다. 장기전과 단기전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힐만 감독의 정규시즌은 단기전보다는 장기 레이스에 좀 더 적합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힐만 감독은 니혼햄 시절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경험이 있다. 단기전에서도 충분한 성과를 냈다. 다만 시간이 상당 부분 지났고, 무대도 다르다. 단기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경문 감독의 수를 어떻게 물리치고, 또 어떻게 반격할 수 있을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한 경기에서의 패배,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가 곧바로 시즌 마감이라는 점에서 압박감은 더 크다. 2018년에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SK이라는 점에서 힐만 감독의 단기전 데뷔도 흥미를 모은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