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승부, 진심 축하' kt의 KIA 향한 예의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10.04 05: 50

캐스팅 보트 이야기에 부담감도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승자를 향해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모습. kt는 그렇게 프로답게 1군 3년차 시즌을 마무리했다.
kt와 KIA의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정규시즌 최종전이 열린 3일 수원 kt위즈파크.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김진욱 kt 감독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kt는 이미 3년 연속 최하위와 창단 후 최저 승률을 확정했지만 KIA는 얘기가 달랐다. KIA는 이날 경기 승리해야만 자력 우승을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만일 kt에 패했다면 2위 두산과 SK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은 늘 그랬듯 "배려는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김 감독은 "2018시즌 첫 3연전이라고 생각한다. 위닝시리즈로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라며 각오를 에둘러 말했다.
선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kt 주전급 야수 A는 "오히려 오기가 생기고 승부욕이 발동한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KIA가 우리를 이기면 자력 우승으로 알고 있다. 홈에서 세리머니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우리 팬들에게 미안할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야수 B는 "만일 KIA가 오늘 져도 두산이 SK에 지면 우승 아닌가. 그렇다면 기분 좋게 축하해줄 수 있다. 그게 서로에게 최선일 것 같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뚜껑을 열자 흐름은 kt가 바라던 반대로 돌아갔다. 선발 주권이 3이닝 2실점으로 일찌감치 마운드를 내려갔다. 김진욱 감독의 선택은 류희운이었다. 올 시즌 중반부터 줄곧 선발 로테이션을 돌던 류희운을 투입하면서까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나타냈다. 홍성용, 조무근까지 차례로 나섰지만 6회까지 스코어는 7-1까지 벌어졌다. 사실상 KIA의 자력 우승으로 분위기가 굳어졌다.
그러나 김진욱 감독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엄상백과 이상화까지 마운드에 올랐다. 엄상백은 김 감독이 다음 시즌 불펜의 키 플레이어로 지목한 선수. 이상화는 김재윤의 이탈 이후 kt의 뒷문을 잠궈온 중추다. 여섯 점까지 벌어진 상황, 거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도 아니었지만 김 감독은 주전들을 모두 투입했다. 그것이 상대 KIA, 그리고 무엇보다 이날 경기장을 찾아준 kt 팬들에 대한 예의였기 때문이다.
경기는 KIA의 10-2 승리로 끝났다. 2017시즌 144경기 대장정에 마침표가 찍힌 순간. kt위즈파크 3루 쪽에서는 KIA의 정규시즌 우승 기념 축하행사가 진행됐다. 기념 티셔츠로 갈아입은 KIA 선수단은 플래카드 앞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팬들은 한 시즌 고생한 선수단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때 kt 선수단도 1루 더그아웃에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며 KIA 팬들과 함께 나란히 박수를 보냈다. kt 구단 측도 전광판에 KIA 우승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띄웠다.
축하 세리머니가 끝난 후 김기태 KIA 감독은 1루 더그아웃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김진욱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기태 감독은 김진욱 감독의 손을 맞잡으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준, 그리고 축하를 보내준 상대에게 화답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0년 9월 19일 대구 시민야구장 삼성-SK전. 이날은 '양신' 양준혁의 은퇴경기가 열렸다. 그러나 이날 SK 선발 김광현은 양준혁에게 4타수 무안타 3탈삼진을 기록했다. 경기 후 양준혁은 "최선을 다해 던져준 (김)광현이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를 향한 예의다. 만일 kt가 '져주기'로 경기에 임했다면 이긴 KIA도 찝찝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정규시즌 막판, 선두 KIA와 2위 두산을 연이어 만나는 kt에게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표현했다. 팬들은 "kt가 특정 팀 밀어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kt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치열했던 승부가 끝나는 순간, 상대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것이 캐스팅 보트를 쥐었던 kt가 순위 싸움 중인 팀에게 보내는 최선의 예의였다. 그리고 이날 kt위즈파크 1루 쪽을 가득 메워준 홈팬들을 향한 올 시즌 마지막 인사이기도 했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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