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에 이른 포지션별 최고 선수가 2~3년 정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적잖다. 하지만 2루수 포지션은 사뭇 다르다. 최고 2루수에 주어지는 황금장갑을 2년 연속 지킨 선수가 근래 들어서는 거의 없다. 올해도 그런 기미가 보인다.
2루수는 골든글러브는 야수 부문에서 가장 수성이 힘든 포지션으로 뽑힌다. 예전에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역대 사례에서 2루수 부문 황금장갑을 2년 연속으로 낀 선수는 정구선(삼미·1983~1985), 김성래(삼성·1986~1988), 강기웅(삼성·1989~1990), 박정태(롯데·1991~1992, 1998~1999)까지 네 명이 있었다. 하지만 박정태 이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2루수는 없다.
그 사이 적잖은 2루수 골든글러브 새 얼굴이 배출됐다. 박종호, 안경현, 김종국, 정근우, 고영민, 조성환, 안치홍, 서건창, 나바로까지 총 9명의 선수들이 주거니 받거니 레이스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 자리를 2년 연속 지키지 못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다. 근래 들어서는 서건창이 2012년, 2014년, 그리고 지난해 세 차례 골든글러브를 따냈다. 그러나 올해 타이틀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건창은 29일까지 138경기에 나가 타율 3할3푼1리, 출루율 4할3리, OPS(출루율+장타율) 0.832, 6홈런, 15도루를 기록했다. 177개의 안타를 쳤다. 물론 훌륭한 성적이다. 그러나 수상을 장담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단순히 OPS만 따지면 서건창은 2루수 부문 5위에 해당한다.
OPS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겠으나 OPS로 본 1위는 박민우(NC)다. 최근 규정타석에 들어왔다. 박민우는 105경기에서 타율 3할6푼3리, OPS 0.913을 기록 중이다. 가중출루율(wOBA)에서도 0.412로 리그 1위다. 적어도 투표인단에 가장 크게 호소할 수 있는 공격 생산력만 놓고 보면 가장 좋다. 다만 이제 막 규정타석에 진입한 게 관건이다. 105경기 출전에 불과하다. 골든글러브 기준선은 넘어서지만 전체적인 시즌 공헌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투표인단의 성향에 달렸다.
서건창의 또 다른 대항마는 안치홍(KIA)이다. 안치홍은 시즌 129경기에서 타율 3할1푼4리, OPS 0.872, 19홈런, 88타점을 기록했다. 2루수 중 가장 높은 장타율을 자랑한다. 또한 2루수 부문 수비 최다이닝이 유력하다. 박민우가 790이닝을 소화한 것에 비해 안치홍은 1058⅓이닝을 플레이했다. 균형 잡힌 성적을 낸 서건창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서건창은 지난해에 비하면 떨어진 성적이지만 수비 1000이닝을 넘겼고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다.
수비력 하나만 놓고 보면 리그 최고의 평가를 받는 앤디 번즈(롯데)도 공·수에서 균형 있는 성적을 냈다는 시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면 후보 자격이 없다. 지난해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은 타율 3할1푼이 커트라인이었다. 번즈의 타율이 꾸준히 높아지며 3할을 찍었지만 남은 경기상 3할1푼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경기를 남긴 번즈의 타율은 3할2리다.
이처럼 변수가 많고 서로가 내세우는 장점이 달라 표심이 엇갈릴 가능성도 있어 마지막까지 진땀나는 승부가 예상된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포지션”이라는 말이 올해도 나올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