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1636년을 배경으로 무기력한 조선의 국방력을 만천하에 드러낸 참혹하고 비참한 ‘굴욕의 시대’를 담은 작품이다. 왕 인조의 무능과 신하들의 뻔뻔함이 가히 오케스트라 같다고 표현할 만하다.
이 비극의 끝은 인조가 말도 타지 않고 직접 먼 길을 걸어 삼전도에 온 청 태종(칸) 앞에 도착했을 때 절정을 이룬다. 인조는 항복의 의미로 3배 9고두를 하는데, 인조를 연기한 배우 박해일의 이마에 흙이 가득 묻은 모습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비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는 시절은 인조가 다스리던 시기이다. 조선의 대신들은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새롭게 일어나는 후금(청)을 멀리했다. 그러자 후금은 1627년 조선에 형제 관계를 요구하면서 침입했고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그때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던 걸까.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은 청의 신하이며 신하로서 예를 갖추라고 요구했다. 이때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분)과 자존심을 버리고 화해를 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로 나뉘었다.
결국 조선은 척화파의 주장이 우세해 청을 야만족, 오랑캐라 무시하며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가 난 청의 왕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침입해 1636년에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인조와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47일간 대항했지만 점점 음식이 떨어지고 추위에 대비할 수 없게 되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항복을 선언했다. 막상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왕과 관리들이 허둥지둥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 현재의 정치상황과 비교해 기시감을 안긴다.
무능한 왕 인조와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말하는 신하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도 그렇다.
‘남한산성’이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몇 백 년이 흐른 2017년 현재에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강대국의 압박에 무력한 정치권과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당시의 절박하고 고단했던 나날에 뜨거운 여운이 남는다.
무엇보다 화친을 하자는 최명길 역의 이병헌과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 역의 김윤석이 빚어내는 연기의 향연이 볼 만하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이들 모두에게 설득되고 말았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던 황동혁 감독은 소설의 대사들을 살리면서도 관객이 듣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윤색하는 작업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완성돼 정통 사극임에도 고리타분하지 않다. 올 추석 1636년 병자호란의 현장으로 이끌 ‘남한산성’이 관객들에게 생각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안겨줄 것 같다./purplish@osen.co.kr
[사진]영화포스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