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나 배급사 CJ(E&M)도 ‘군함도’ 개봉 당일까지 몇 개의 스크린에 배정됐는지 몰랐다.”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는 28일 오후 1시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영화, 어디쯤 가고 있는가-영비법 개정 이후를 경청하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진행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에 따른 토론회에서 시작부터 이 같은 말로 스크린 독과점, 수직계열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CJ 같은 대기업이 투자 및 배급, 멀티플렉스 운영을 겸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고 대표는 이어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율, 분권, 협치라는 최소한의 권리를 지킬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 측이)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말하는 게 틀린 것 같다”며 “이제 영화가 (자본에)독립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것을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오늘의 토론의 방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기자협회가 주최하고 노웅래 국회의원실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는 배우 정진영이 사회를 맡아 영비법 개정안 적용에 따른 현안을 놓고 패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1부에서는 CGV 조성진 전략지원담당, 엣나인 정상진 대표,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최재원 대표,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가 패널로 나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무성 팀장, KTB 이승호 상무, 영화감독 정윤철, 영화사 하늘 김광현 대표,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은 2부의 패널로서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회 개최 취지는 영화계는 물론 영비법이 문화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과 파장을 진단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해 보자는 것.
앞서 영비법 개정안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각각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대기업이 영화 상영과 배급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게 골자이다.
최재원 대표는 “한국 영화를 오랫동안 제작 투자했던 사람으로서 말씀 드리면 영비법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누적돼왔지만 누군가 쉽게 얘기하지 못한 문제였다”며 “극장 운영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수직계열화에 원인이 있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치적 논리를 대면서(CJ E&M배급 작품이 잘 안 된 해를 따져서) 극장-배급사 수직계열화에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면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직계열화가 담론이 된 이유는 우리 영화산업계에 공정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관객들이 점점 극장에서만 영화를 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멀티플렉스가 대작 영화를 몰아주는 ‘스크린 독과점’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일이 전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소수의 대기업이 제작·투자·배급·상영 등을 독점해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CGV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자는 “올 여름 ‘군함도’의 개봉 당일 스크린수가 2000개 이상을 차지해 논란이 됐었다. 스크린 수는 영화가 한 회 차만 상영되도 스크린 하나를 잡는다. 7월 26일 개봉했을 때 스크린 점유율 37%, 상영 점유율 55.2%라서 개봉 첫 주차부터 논란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장의 문제로 스크린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신데, 이는 극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꾸준히 문제 해결을 위해 내부토론을 하고 있다. 개봉 되는 영화가(약 1500편)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는데 스크린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또 우리 관객들의 기호에도 쏠림현상이 보인다. 1등 영화나 블록버스터만 보지 않나. 어제 개봉한 ‘킹스맨2’도 그런 경우다. 이 영화 한 편에 개봉 당일 48만 명이 들었다. 기다린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한 두 편에 대한 쏠림 현상이 관객들에게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한 곳 이상이 극장사업을 다른 기업에 매각하거나 배급 사업에서 손을 뗄 경우의 상황을 예측하고 수직계열화 해체, 스크린 독과점 방지, 다양성영화 쿼터제 신설 등의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CGV 조 담당자는 “스크린 편성은 관객 선호도에 기반했고, 자사 영화에 대한 밀어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배급-상영에 대해 고 대표는 “상영 배급이 분리된다면 극장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 배급사가 좋을 것 같다. 공정한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스크린 상한제가 핵심인 것 같다”며 “상영 배급의 분리로 커버되지 않는다. 배급사조차 몇 개의 스크린이 배정될지 알 수 없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은 해소될 수 없다. 스크린 상한제와 병행돼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도 “CGV나 롯데시네마가 극장 사업을 포기해도 스크린 독과점은 완화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영화관의 상영시간표를 보면 독과점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초기 자본이 많다 보니 영화관의 운영주들이 수익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개정안이 가진 한계나 개선 사항을 공유하면서 대안을 고민했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현안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고 대표는 “CGV는 시가총액이 1조3000억이 넘는다. 충분한 자금력이 있기에 누가 어떻게 인수하느냐에 따라 미치는 파급력이 지대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비법 전체가 개정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전면개정안에서는 영화관람 특성이 달라질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러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당장 예측은 어렵다”고 했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최재원 대표는 “대기업이 극장 사업을 포기하면 독과점의 완화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영비법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단순히 대기업의 극장 사업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대기업의 극장 소유 문제가 아니라 스크린 독과점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상영-배급 분리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영비법 개정안 이후 미칠 영향에 대해 “제작 위축이나 대규모 영화 중심으로 제작이 편중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대기업의 영화 사업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이에 해외 업체들이 국내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