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레이스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2014년 수상자들인 코리 클루버(31·클리블랜드)와 클레이튼 커쇼(29·LA 다저스)의 타이틀 탈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올 시즌 사이영상 레이스는 양대리그 모두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변곡점도 있었다. 아메리칸리그는 전반기까지만 해도 크리스 세일(보스턴)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클루버가 후반기 들어 치고 나가며 혼전에 접어들었다. 내셔널리그는 시작부터 커쇼와 맥스 슈어저(워싱턴)가 경쟁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중간에 부상을 당하는 변수가 있었다. 그 사이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등 다른 선수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제는 서서히 정리가 된다. 아메리칸리그는 클루버의 추월이 매우 유력해졌다. 클루버는 27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28경기에서 완봉승 3번을 포함, 18승4패 평균자책점 2.27의 성적을 냈다. 26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은 0.86에 불과하다. 후반기 14경기에서 11승을 쓸어 담으며 평균자책점 1.79를 기록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세일도 전체 성적은 훌륭하다. 클루버보다 더 많은 이닝(세일 214⅓이닝·클루버 198⅔이닝)을 던졌고, 더 많은 탈삼진(308개)을 기록했다. 300탈삼진은 분명 투표인단에 호소할 수 있는 무기다. 승수도 크게 차이는 안 난다. 그러나 후반기 다소 주춤했던 가운데 평균자책점이 2.90으로 뛰었다. 여기에 클루버는 소속팀의 ‘22연승’을 이끌었다는 강력한 인상도 있다. 개인 성적은 아니지만 투표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다. 이런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남은 것은 내셔널리그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커쇼다. 커쇼는 올 시즌 26경기에서 18승4패 평균자책점 2.21을 기록 중이다. 부상으로 한 달 정도 빠져 있었음에도 내셔널리그 다승 1위, 평균자책점 1위다. 한 번의 등판이 더 남아있어 최소한 공동 다승왕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관왕은 사이영상 자격의 좋은 근거가 된다. 이에 비해 슈어저는 16승6패 평균자책점 2.55다. 탈삼진 타이틀이 있지만 세일처럼 300개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이닝이다. 커쇼는 부상 탓에 171이닝 소화에 그쳤다. 180이닝 미만에서 시즌이 끝날 전망이다. 예전에는 “최소 200이닝은 던져야 자격이 있다”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실제 역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구원 제외) 중 180이닝 미만 소화 투수가 사이영상을 차지한 것은 딱 2번이었다. 1984년 릭 셧클리프(150⅓이닝), 1994년 데이빗 콘(171⅔이닝)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닝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도 읽힌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의 컬럼니스트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2010년 이후 투표인단의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2010년은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가 고작(?) 13승(12패)으로 사이영상을 따낸 해다. 그 후로는 투표인단이 좀 더 승수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커쇼는 사이영상 수상 당시 다승과 평균자책점 타이틀이 있었다. 클루버 또한 2014년 공동 다승왕이었다. 2015년 수상자인 댈러스 카이클(휴스턴)과 제이크 아리에타(시카고 컵스)의 공통점도 ‘다승왕’ 훈장이었다. 지난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레이스도 그랬다. 일부에서 저스틴 벌랜더(당시 디트로이트·현 휴스턴)의 세부 내용이 더 좋은 점이 있었으나 실력 이외에 막강한 타선 지원까지 등에 업고 22승을 따낸 릭 포셀로(보스턴)가 간발의 차이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은 커쇼와 클루버의 이닝이 다소 적더라도 큰 변수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슈어저나 그레인키의 성적이 커쇼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이런 예상대로 클루버가 수상한다면 2014년 이후 두 번째 영예다. 커쇼는 2011년, 2013년, 2014년에 이어 네 번째 수상이다. 만 30세 이하 투수가 사이영상을 네 번이나 따낸다면 이 또한 주목할 만한 기록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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