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인터뷰①] "꿈을 이룬 시간" 황재균이 말하는 ML의 추억
OSEN 이종서 기자
발행 2017.09.21 06: 00

"정말 딱 한 번만이라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황재균(30)은 올 시즌을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1년 총액 310만달러(약 35억원)의 스플릿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맞았지만 두 차례의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았고, 메이저리그 18경기에서 타율 1할5푼4리(52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 OPS 0.459의 성적을 남겼다. 트리플A 성적은 98경기 출장, 타율 2할8푼5리(351타수 100안타) 10홈런 55타점 OPS 0.785.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황재균은 9월 확대 엔트리 실시에도 빅리그 재진입에 실패했고, 결국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비록 짧게 맺은 미국과의 인연이었지만, 황재균에게는 도전부터 마무리까지 매순간이 경험이었고, 성장의 장이 됐다. 

▲ 한 번의 실패 “고치라는 부분, 다 고쳤다”
지난 2015년. 황재균은 포스팅 절차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현실을 녹록지 않았다. 포스팅 결과는 '응찰 구단 없음'.
냉정한 결과를 받아든 황재균은 오히려 더욱 이를 악물었다. 오랜 시간 꿈꿔 왔던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이야기에 귀도 활짝 열었다. 황재균은 "포스팅 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레그킥을 높게 들고, 스윙폼이 커서 메이저리그 볼을 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힘을 더 키워 스윙을 짧게 가지고 갔다. 또 체력적인 부분을 지적해서, 그동안 후반기 떨어졌던 부분을 보강했다. 여기에 2015년 당시 홈런이 갑자기 올랐는데, 1년은 어쩌다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와서 2016년에도 그 성적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황재균은 2015년 타율 2할9푼 26홈런으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16년 타율은 3할3푼5리로 수직 상승했고, 홈런 역시 27개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황재균이 타격폼을 바꾼다고 하자 주위에서는 우려섞인 시선도 나왔다. "커리어 하이인데 왜 타격폼을 바꾸냐. 바보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그러나 한층 더 성장한 황재균에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졌고, 결국 샌프란시스코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 마이너에서의 시작 "이동이 가장 힘겨웠다"
황재균은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서 타율 3할3푼3리, 5홈런, 15타점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샌프란시스코의 동료와 코치가 뽑는 올해의 스프링캠프 신인상인 '2017 바니 뉴전트 어워드' 수상자로도 선정될 정도로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개막 로스터에서 황재균의 이름은 없었다.
트리플A에서 시작한 미국 무대. 빅리그와 다른 열악한 시설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넓은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일정이 가장 낯설었다. "이동이 가장 힘들었다"고 운을 뗀 황재균은 "몇 시에 경기가 끝나든 새벽 3시에는 일어나서 바로 야구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공항을 가야한다. 미국은 비행기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첫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12~1시 쯤에 숙소에 도착해 잠깐 낮잠을 자면 바로 7시 경기에 들어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뛴 선수조차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황재균은 비교적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 "데뷔전 홈런" 황재균이 꼽은 ML 최고의 장면
황재균은 계약 당시 3월과 7월, 두 번의 옵트아웃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옵트아웃'이란 팀이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승격시키지 않을 때, 그 선수가 희망한다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6월말까지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지 못하던 황재균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마이너리그에서 계속해서 기다리던지, 아니면 옵트 아웃 조항을 이용해 자유 계약 신분을 얻던지, 황재균은 '7월 이전까지 콜업하지 않을 경우 옵트아웃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때마침 팀 내야진에 구멍이 생겼고, 황재균은 6월 28일 오랜 기다림 끝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콜업 된 다음날인 29일. 황재균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었다. 콜로라도전에 3루수-5번타자로 선발 출장한 그는 3-3으로 맞선 6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135m 대형 홈런을 날리며 팀에게 리드를 안겼다. 결국 샌프란시스코가 5-3으로 승리하면서 황재균의 홈런은 결승타가 됐다. 빅리그 첫 안타가 결승 홈런이 됐다. 황재균은 "메이저리그 경기 중 첫 홈런 장면이 기억이 남는다"고 미소를 지었다.
홈런포로 황재균은 샌프란시스코의 일원이 됐다. 황재균은 "메이저리그 수석 코치가 수비적인 부분을 인정해줘서 기분이 좋았고, 타격 코치도 방망이 가지고 있는 자질이 좋다고 칭찬을 해줬다"라며 "메이저리그에서 사실이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인정받은 것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황재균 지인도 황재균의 적응과 메이저리그 선수의 관심에 놀라기도 했다. 황재균의 지인은 "미국에서 황재균이 미국 선수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단순히 '잘 지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통역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미국 선수들은 보통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오는 선수들의 경우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선수 외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황재균에게는 먼저 다가가서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면서 단기간에 완벽하게 샌프란시스코의 일원이 된 황재균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황재균 역시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대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컸다. 그는 “헌터 펜스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크로포드도 장난 많이 치려고 했다. 닉 헌들리도 먼저 와서 한국말로 인사해줬고, 타이 블락과는 친하게 지냈다"며 "선수들이 하나 같이 잘해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다시 돌아온 한국, "아쉬움은 크지만, 미련은 없다."
꿈과 같았던 메이저리그 무대 데뷔전. 그러나 이후 황재균은 좀처럼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고, 한 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다시 트리플A행을 받았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가 주전 3루수인 에두아르도 누네즈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하면서 황재균은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에 기회를 받았다.
7월 29일 두 번째 빅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황재균은 5경기에서 타율 1할2푼5리로 부진했고, 결국 다시 트리플A로 내려가게 됐다. 9월 확대엔트리에서 콜업을 기대했지만, 황재균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황재균은 고심 끝에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행을 택하게 됐다. 황재균 에이전트 측은 "스플릿 계약을 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그 해에 많이 보여줘야 한다. 선수가 24~25살이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나이도 적지 않고, 올 시즌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못 보여 줬으니 내년에도 입지는 비슷하리라는 것을 인지했다"라며 "만약 내년에 도전한다면 정말 길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하자고 제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선수도 지쳐있었다. 빨리 마음을 정하고 돌아오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고 한국행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현재 일본에는 거포 내야수가 귀한 편이다. 그만큼 황재균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대우 면에서도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좋지만 황재균은 한국 복귀를 택했다. 황재균은 "일본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단지 메이저리그에서 한 차례 뛰고 싶다는 꿈을 이뤄서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
황재균은 "예전부터 메이저리그 한 경기만 뛰고 싶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고,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뛰면 어떤 기분일지가 궁금했다"라며 "많이 보여주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해봤다.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미련은 없다"고 약 7개월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비록 성공으로는 끝나지 않았지만 황재균은 앞으로 야구 생활에 있어 미국에서의 생활을 큰 성장 밑거름이 됐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과 함께 있으면서 생활이나 연습 등을 봤고, 또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신경 쓰는지 배우게 됐다. 한국과는 또 다른 모습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고 밝혔다. / bellstop@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