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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의 사자후] 프로농구 조기진출 바람...‘명문대=성공’ 공식 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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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프로농구에 ‘얼리 엔트리’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프로농구 신인들은 대학을 4학년까지 모두 마치고 프로에 데뷔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런 관행이 깨지고 있다. 정효근(24, 전자랜드)과 허웅(24, 상무) 모두 3학년만 마치고 프로에 뛰어들어 주전급으로 자리를 굳혔다.

송교창(21, KCC)은 사상 최초로 고등학교만 마치고 2015년 드래프트 전체 3순위에 뽑혔다. 올스타로 성장한 송교창은 3년차 시즌에 보수 1억 4천만 원을 받는 ‘억대 선수’가 됐다. 송교창의 성공사례로 꼭 명문대에 진학해야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공식은 깨졌다.

▲ 과거 명문대=프로성공 공식

과거에는 농구명문대를 진학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졌다. 1998년부터 실시된 총 20회의 신인드래프트 중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가 합산 16회의 1순위 선수를 배출했다. 예외는 2004년 양동근(한양대), 2010년 박찬희(경희대), 2012년 김시래(명지대), 2013년 김종규(경희대)밖에 없었다. 이 네 명의 선수들도 역시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고 프로에 뛰어들었다.

역대 1순위 선수 중 대학 4년을 다 마치지 않고 프로에 뛰어든 선수는 2005년 방성윤, 2008년 하승진 밖에 없었다. 두 선수 모두 미국농구에 진출하면서 일찌감치 프로에 뛰어든 뒤 국내로 유턴한 경우다. 명문대는 프로농구에서 성공할 수 있는 출세의 장으로 여겨졌다. 명문대들 역시 우수한 선수를 먼저 확보하기 위한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농구명문대는 청소년대표출신 고교유망주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다. 포지션이 중복되다보니 막상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벤치만 지키는 경우가 있다. 대학에서 실력이 오히려 퇴보하는 선수도 종종 나온다. 이럴 바에야 자신이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낫다. 명문대 선호현상의 반대급부다. 

2001년 전체 3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김승현은 동국대 출신이다. 그는 프로에 오면서 빛을 발했다. 2001-02시즌 8.2점, 7.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상과 정규시즌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김승현은 프로에서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닌 실력임을 증명했다.

▲ 대학 4년에 군대까지...선수생명이 너무 짧다

이제 한 단계 나아가 능력 있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 꼭 대학에 가거나 졸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아마추어리그에서는 아무래도 프로에 비해 선수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경기를 뛰다보면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며 뛸 때도 있다. 그럴 바에야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프로에 일찍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한국선수들은 군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특수성도 있다. 대학 4년을 마치고, 프로에 가더라도 2~3년 적응한 뒤 군대까지 다녀오면 금방 서른이 된다. 프로에서 FA 자격을 취득하려면 5년을 온전히 뛰어야 한다. 선수로서 최전성기에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다.

1순위로 프로농구에 진출해 정상급 선수로 자리 잡은 오세근, 김종규, 이종현 역시 4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왔다. 특히 농구공을 늦게 잡은 오세근의 경우 제물포고시절 1년 유급을 했다. 그나마 오세근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상무 복무기간 중 조기전역을 했다. 덕분에 2016-17시즌을 마치고 FA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김종규와 이종현 역시 군면제 혜택을 받아 그나마 선수경력이 연장됐다. 하지만 대학 4년을 뛰면서 기대한 만큼 기량이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듣고 있다. 대학대표팀 선수들은 대학과 성인대표팀을 오가며 너무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부상을 안고 혹사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바에야 일찍 프로에 가는 것이 낫다는 바람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 얼리 엔트리, 바람직한 합의점은?

이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서는 얼리 엔트리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차두리, 이천수, 송종국, 박주영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명문대를 거쳐 프로에 가는 것이 당연했다. 박지성은 심지어 대학진학에 난항이 오면서 선수생활을 접을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최근 A급 선수들은 고교졸업과 함께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출중한 선수는 중학생 때부터 여러 에이전트의 구애를 받는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구단이 고등학교 졸업선수를 지명해 2군에서 육성해 키워서 쓴다. 올 시즌 신인상이 확실한 이정후(19, 넥센)는 프로데뷔와 함께 신인최다안타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활약 중이다. 2018 프로야구 2차 신인 지명에서 뽑힌 100명의 선수 중 고졸은 81명이었다. 대졸은 18명에 불과했다.

앞으로 프로농구도 A급 선수들이 과감하게 대학을 건너뛰거나, 대학졸업 전에 프로에 나오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2018 드래프트에서도 이미 2학년 유현준(한양대)과 1학년 양홍석(중앙대)이 참가를 선언했다.

A구단 스카우트는 “구단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외국선수가 자유계약제로 바뀌고 신장이 낮아지면서 국내 장신을 확보하자는 분위기가 있다. 허훈보다는 양홍석이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현준도 1라운드 중반에는 지명될 것”이라 내다봤다. 가뜩이나 올해 드래프트 선수층이 얕아 두 선수는 단연 돋보이는 재목이다.

문제는 능력 있는 선수가 소속대학과 조기진출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기 쉽지 않다는 것. 양홍석의 경우도 진통 끝에 자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양홍석은 19일 연세대와의 대학리그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학 측도 충분한 사정이 있다. 체육특기자로 혜택을 주면서 선발한 학생선수가 4년 동안 활약해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선수가 중도에 하차를 하면, 다른 선수에게 줄 수 있었던 기회비용을 날리게 되는 셈이다. 교육적으로도 학생이 교과과정을 이수해 졸업하길 원하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선수 입장에서는 프로에서 뛸 기량이 충분히 있는데 학교의 눈치를 보면서 프로에 가지 못하는 것도 비극이다. 누구나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자퇴를 하더라도 학교장의 승인을 얻어야 프로농구에 지원서를 낼 수 있는 현행제도도 문제점이 있다. 만약 학교장이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경우 선수는 1년을 쉬고, 일반인 자격으로 드래프트에 나가야 한다. 선수로서 가치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해결책은 선수와 학교가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애초에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언제든 얼리 엔트리를 선언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농구명문팀의 경우 ‘1학년만 마치고 프로에 갈 수 있다’는 조항을 걸고 A급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켄터키대학은 전미최고의 유망주들을 불러 모아 한 시즌을 치른 뒤 이들을 대거 NBA에 보낸다. 또 다음해 유망주를 수급받는 원앤던(one&done) 방식으로 농구부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명문대들이 슈퍼스타들에게 비슷한 계약조건을 제시한다. 하승진 역시 1학년만 뛰고 NBA 진출을 타진하는 조건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던 전례를 만들었다.

프로농구는 자본주의 논리로 운영된다. 얼리 엔트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대학농구에서도 어떻게 하면 주어진 시간안에 선수를 더 잘 키워내 프로에 보낼 것인지 건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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