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 한송이의 재발견, 인내와 의지의 결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9.18 06: 00

“집에 가고 싶었어요”
베테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했지만, 또 담담했다. 지난여름의 어려움이 목소리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송이(33·KGC인삼공사)는 혹독했던 훈련을 돌아보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다시 찾은 예전 포지션. 반갑기도 했지만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적잖은 나이에 따라가기 버거운 점도 분명히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인삼공사로 이적한 한송이는 포지션을 바꿨다. 전 소속팀이었던 GS칼텍스에서는 주로 센터로 뛰었던 한송이는 원래 포지션인 레프트로 이동했다. 팀 사정 탓이었다. 인삼공사는 레프트 포지션의 높이와 공격력이 약하다. 주 공격수인 외국인 선수 알레나를 도와줄 선수가 필요했다. 서남원 감독은 한송이에게 주목했다. “이제는 레프트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인식을 뒤집어 생각했다.

한송이는 한때 리그를 대표하는 레프트 자원이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일익을 담당할 정도였다. 정상급 공격력을 뽐냈다. 실제 V-리그 역대 득점 2위가 바로 한송이(4223점)다. 도로공사 시절이었던 2007-2008시즌에는 여자부 득점왕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한송이의 몸은 센터의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름에는 사실상 개조 작업이 진행됐다. 서 감독은 러닝-줄넘기-비치발리볼의 3단 프로젝트를 안겼다.
신체 능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후배들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 한송이다. 특히 3단 뛰기가 어려웠다. 한송이는 “줄넘기를 할 때는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고 웃으면서 “2단 뛰기는 많이 했는데 3단 뛰기는 고등학교 이후로 해본 적이 없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안 해서 처음에는 한 개도 못했다. 러닝이나 비치발리볼도 어려웠다”고 담담하게 여름을 떠올렸다.
하지만 오기로 달려들었다. 한송이는 “감독님께서 어린 선수들이 3단 뛰기 50개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도 50개를 바라신 게 아니었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셨다”면서 “(레프트로 오면서) 아예 폼이 바뀌었다. 점프를 하는 것, 팔 스윙이 그렇다. 줄넘기와 러닝, 비치발리볼을 하면서 중심도 좀 잡히고, 체력적인 부분도 많이 끌어올렸다”고 했다.
사실 한송이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많은 배구선수들이 그렇듯 이곳저곳 아픈 데가 많다. 선수 스스로 “팀에 올 때 안 좋은 상태로 왔다. 어깨를 거의 쓰지 못했다. 볼을 못 만질 정도였다. 완전히 좋은 상황은 아니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보강 운동을 하면서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단계별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2017 천언·넵스컵 프로배구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현대건설전에서 25점, 흥국생명전에서 19점을 했다. 서 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묻어난다.
서 감독은 “한송이는 붙박이다. 레프트 한 자리에서 10득점 하는 선수가 없었는데 오늘 19점을 했다. 평균적으로 15점을 해준다고 보면 레프트 한 자리는 효과적일 것 같다”라면서 “팀을 이끄는 베테랑인 김해란과 한송이의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송이는 후배들에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면서 조언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리더로서의 몫도 기대하고 있다.
한송이는 “아직 체력적인 면이나 리시브, 수비는 부족하다. 받고 때리는 점도 보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적인 부분이 될 것 같다. 어떻게 컨디션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시즌 마지막까지 처지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다”라면서도 “다시 레프트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미소 지었다. 돌고 돌아 다시 찾은 예전의 포지션. 자신에게 명예를 안겼던 그 자리에서 한송이가 다시 배구 인생을 시작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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