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어요." 황수범(31)이 첫 승을 거두기까지는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
황수범은 지난 2011년 육성선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이듬해 정식 선수가 됐지만, 1군 기회를 받지 못했다. 2014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1군에 오르기까지는 약 2년이 넘게 걸렸다.
지난 5월 13일 황수범은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았다. 5월 18일과 23일 두 차례 구원 투수로 나섰던 그는 24일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꿈만 같았던 1군 생활이 열흘 만에 끝났지만 이후 그는 2군에서 꾸준히 선발로 나서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지난 8월 13일 두 번째 1군 무대를 밟았다. 이번에는 선발이었다. 8월 13일 대구 롯데전에서 데뷔 후 첫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았지만, 3⅓이닝 6실점(5자책)으로 다소 부진했다.
다시 2군으로 내려가나 싶었지만, 김한수 감독은 "황수범이 2군에서 선발로 계속 경험을 쌓았고, 여러가지 구종에다 좋은 공을 갖고 있다"며 "지난번 경기는 첫 선발이라 아무래도 긴장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 기회를 줬다.
다시 기회를 받은 황수범은 한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8월 19일 잠실 LG전에 등판한 그는 5이닝 3실점(1자책)으로 호투를 펼쳤다. 비록 불펜 난조로 승리를 챙기지 못했지만, 1군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호투였다.
세 번째 등판이었던 8월 26일 kt전에서는 윤석민에게만 홈런 두 방을 허용해 3이닝 6실점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그리고 황수범은 네 번째 등판에서 마침내 승리를 품었다.
2일 잠실 두산전에 등판한 그는 올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2회와 3회 1실점씩을 했지만, 피안타는 총 3개에 불과했고, 삼진은 8개나 뽑아냈다. 5회까지 던진 투구 수는 총 86개. 직구 최고 구속은 148km/h가 나왔고, 포크(23개)와 커브(16개)가 적절하게 들어가면서 두산 타자들을 무력화시켰다.
황수범이 마운드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타자들도 힘을 냈다. 1-2로 지고 있는 가운데, 6회초 김헌곤이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결국 황수범은 6회말 승리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백정현에게 넘겨줬다.
3-2의 살얼음판 리드. 백정현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9회 장필준이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삼성의 5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황수범의 첫 승이 올라가던 순간이었다.
프로 입단 후 6년 만에 거둔 첫 승. 황수범은 "정말 꿈만 같던 첫 승을 거뒀다"라며 "너무 오래 걸린 것 같다"고 첫 승 소감을 전했다.
3-2로 팽팽하게 맞선 데다가, 상대가 2위 두산이었던 만큼 황수범은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경기를 지켜봤다. 황수범은 "6회 이후 '설마'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오래 걸렸던 만큼, 더욱 간절했던 순간. 그만큼 황수범은 잡았던 기회를 놓지 않기 위해 '투혼'을 발휘했다. 3회 1사 1,2루 상황에서 박건우의 타구가 황수범의 왼 손목을 강타했다. 마운드를 내려갈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황수범은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비록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래서 참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참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버티고 서 있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황수범과 호흡을 맞춘 권정웅은 "(황)수범이 형은 완급조절이 좋은데다가 무엇보다 직구의 위력이 좋은 투수"라며 "오늘은 직구 완급조절이 좋았던, 포크와 느린 커브가 잘 들어갔다”고 이날 경기 호투에 비결을 분석했다.
황수범 역시 "제구가 불안하기 때문에, 변화구 제구가 안 될 경우 직구를 노리를 경우가 많아서 변화구 컨트롤을 신경 쓴 것이 좋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변화구가 적절하게 들어갔지만, 가장 자신있는 구종은 단연 직구다. 그는 "직구가 가장 자신있다. 직구가 컨트롤이 되어야 변화구도 효과를 본다고 생각한다. 직구를 최대한 자신 있게 던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자세는 3회 김재환을 병살로 처리한 모습에 나타났다. 이날 황수범은 2회 김재환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자신있게 던진 직구가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130m짜리 대형 홈런이 됐다. 그리고 손에 공을 맞은 뒤 첫 타자도 김재환.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황수범은 과감하게 초구로 직구를 꽂아 넣으며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포크볼로 병살 처리를 하며 위기를 넘겼다.
황수범은 "같은 공이라도 좀 더 자신있게 던지려고 했다. 그동안 밸런스가 흔들리면 생각이 많았는데, 오늘만큼은 타자와 싸워서 이기겠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다"라며 "비록 홈런을 맞았지만, 같은 구종을 또 던지게 되면 더 자신 있게 하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 거둔 첫 승. 오래 걸린 만큼, 고마운 사람도 많았다. 황수범은 "군대 전역 후 생각보다 (1군에 올라오기가) 오래 걸렸다. 첫 승 순간 부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 코치님께도 떠올랐다. 또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이날 극적인 순간 역전 홈런을 날리며 승리를 안겨준 김헌곤에 대해서도 "(김)헌곤이가 항상 '형, 수비와 공격에서 많이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도와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