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데이] 선우예권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음반, 피아노의 울림을 만끽하라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7.09.01 14: 59

지난 6월11일(한국시간) 낭보가 전해졌다. 28세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4년만에 열리는 제15회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다. 2015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에 견줄 만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유튜브를 검색하면 결선 당시 연주곡이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감상할 수 있다. 땀이 흥건한 채 마지막 건반 터치를 끝낸 후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이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하긴,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이 광기어린 연주를 선보인 바로 그 곡이 아닌가.
선우예권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음반 ‘Cliburn GOLD 2017’이 최근(8월18일) CD로 발매됐다. 지난 6월23일 디지털음원 발매에 이어 2개월여만에 CD로, 앨범 재킷 디자인을 달리해 나온 것이다. 음원, 음반 모두 올해 유니버설뮤직이 출범시킨 레이블 ‘데카 골드’(Decca Gold)에서 나왔다.
[클럽데이]에서 이 CD를 리핑해 하이엔드 오디오로 모니터해봤다. 동원한 오디오는 루민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DAC ‘T1’, 올닉의 진공관 프리앰프 ‘L-8000 DHT’, 모노블럭 파워앰프 ‘M-3000 mk2’, 윌슨베네시의 스탠드마운트 스피커 ‘Endeavour’(아래사진). 요즘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 기반 음악재생 소프트웨어 ‘룬’(Roon)을 활용했다.

우선 수록곡은 다음과 같다.
1. 라벨의 ‘왈츠’(Ravel ‘La Valse’)
2. 퍼시 그레인저 편곡의 ‘사랑을 말하다’(Grainger ‘Ramble on the Last Love-Duet’)
3.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무장한 남자 주제에 의한 토카타’(Hamelin ‘Toccata on L’homme Arme’)
4,5.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58번 다장조’(Haydn ‘Piano Sonata No.58 in C major’)
6. 슈베르트의 ‘리타나이’(Schubert ‘Litanei’)
7,8,9.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내림나단조’(Rachmaninoff ‘Piano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6)
트랙 리스트를 보면 결선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없다. 레너드 슬랫킨(Leonard Slatkin)이 지휘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FWSO)와 선우예권의 호흡이 기막혔던 터라 이 곡이 수록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참고로 선우예권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총 12곡을 연주했는데 이를 날짜별(현지시간)로 정리하면 이렇다. 연주 장소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베이스 퍼포먼스홀(Bass Performance Hall. 아래사진), 피아노는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다.
예선(5월28일)
1.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58번’ : 앨범 4,5번 트랙
2.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무장한 남자 주제에 의한 토카타’ : 앨범 3번 트랙
3. 슈베르트의 ‘리타나이’ : 앨범 6번 트랙
4.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내림나단조’ : 앨범 7,8,9번 트랙
준준결선(5월30일)
5.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다단조’
6. 라벨의 ‘왈츠’ : 앨범 1번 트랙
1차 준결선(6월3일)
7.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마장조’
8. 퍼시 그레인저 편곡의 ‘사랑을 말하다’ : 앨범 2번 트랙
9.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6번 나장조’
2차 준결선(6월5일)
10.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다장조’
1차 결선(6월7일)
11. 드보르작의 ‘피아노 5중주 2번 가장조’(with Brentano String Quartet)
2차 결선(6월9일)
12.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with FWSO)
앨범 첫 곡은 라벨의 ‘왈츠’가 연다. 무엇보다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현과 통울림이 장난이 아니다. 2000석 규모의 베이스 퍼포먼스 홀 구석구석에 닿을 정도로 강력한 타건이다. 선우예권의 건반 터치감 또한 극명하게 전해진다. 군침이 돌 정도로 낭랑하다. 역시 이렇게 울림과 잔향이 잘 녹음된 음반은 작은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들으면 안된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하이엔드 대형 시스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디테일과 풍성함이 놀랍다. 피아노가 실물 사이즈로 등장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 곡만으로도 이 음반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어지는 ‘사랑을 말하다’는 피아노의 음이 마치 달빛처럼 잘게 부서지는 그 촉감이 좋다. 오른손의 멜로디, 왼손의 화음이 풍성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흔한 말로 '그랜드 피아노가 풀 바디로 나타난다'. 약음에서의 디테일도 잘 살아나는데, 일체의 노이즈 없이 이러한 디테일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잘 된 녹음의 가장 큰 덕목이다. ‘무장한 남자 주제에 의한 토카타’는 벌들이 웅웅 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선우예권의 속주가 빛난다. 리드미컬한 속도감에 절로 기분까지 좋아진다.
하지만 이번 음반의 백미는 마지막 3트랙을 장식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이다. 강력한 타건으로 포문을 연 이 곡은 피아노가 얼마나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다. '룬'에 표기된 이 음반의 다이내믹 레인지는 무려 16에 달한다. 대편성 교향곡이 19~21인 점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기복이다.
어쨌든 이 곡은 소나타라는 형식미를 아주 제대로 갖춘 명곡임이 분명하다.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듣는 것 같다. 음들 사이에 조금치의 빈틈이 없고, 울림은 그윽하고 풍성하며 풍윤하다.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그런 사운드다. 피아노의 타건음과 통울림, 그리고 잔향이 시청실을 가득 메운다. 마지막 3악장은 ‘Allegro Molto’답게 한음한음 정확히 건들며 종횡무진하는 속주에 호흡마저 멈춰진다. 곡이 끝나면 예의 우뢰와 같은 환호성이 들리는데 이 역시 홀로그래픽하다. 간만에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깨끗하게 녹음된 음반이 한 장 나왔다.
/ kimkwmy@naver.com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