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환(33·SK)은 홈런과 친숙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하나둘씩 쌓인 홈런이 빛을 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리그 유격수 최다 홈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팀 역사상 유격수 최다 홈런도 마찬가지다.
나주환은 8월 3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시즌 19번째 홈런을 터뜨렸다. 2-1로 앞선 8회 선두타자로 나서 삼성 선발 윤성환의 136㎞ 빠른 공을 잡아 당겼다. 약간 높은 쪽 코스였는데 맞는 순간의 타구 속도에서 홈런을 직감할 수 있었던 타구였다. 살얼음판 리드, 이후 경기 양상을 고려하면 대단히 중요한 홈런이었다.
이미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2009년 15홈런)은 넘었다. 내친 김에 생애 첫 20홈런 고지를 노린다. 아직 19경기가 남아있기에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다. 타율은 월별로 다소간 부침이 있지만 홈런은 꾸준하다는 점도 기대 요소다. 나주환은 올 시즌 월별로 꾸준히 3~5개의 홈런을 쳤다. 잠시 저조하던 시기를 지나 최근 10경기에서는 타율 3할9푼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기도 하다. 기대를 걸어볼 요소가 충분하다.
갑자기 몸을 키우거나 기술적으로 확 발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막판부터 몸에 맞기 시작한 타격폼이 효과를 보고 있다. 스윙 때 왼쪽 옆구리를 최대한 붙이고, 오른손을 일찍 놓으면서 발사각이 좋아졌다. 다운스윙 유형이었던 나주환이 메이저리그(MLB)식 ‘플라이볼 혁명’을 KBO로 옮겨온 것이다. 단순히 운이 아니었던 만큼 20홈런 이상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하성(넥센)과 시즌 유격수 최다 홈런 경쟁도 가능하다. 김하성은 8월까지 시즌 121경기에서 21개의 홈런을 때렸다. 나주환이 2개 뒤진 채 김하성을 쫓는다. 김하성은 올해 446타수에서 21홈런(4.7%), 나주환은 382타수에서 19홈런(5%)이다. 일반적인 인상과 다르게 홈런 생산력에서 나주환이 밀리지 않는다. 리그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유격수는 두 명뿐이다.
구단 역사에도 도전한다. SK 역사상 유격수 최다 홈런은 2001년 틸슨 브리또의 22홈런이다. 브리또는 삼성 유니폼을 입은 2002년에는 25홈런을 기록하는 등 공격형 내야수로 이름을 날렸다. 2위는 지난해 SK에서 뛰었던 헥터 고메즈로 21홈런이다. 국내 선수로 한정하면 나주환이 2002년 김민재(12홈런)를 두 차례 넘어 구단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수비 부담이 엄청나게 큰 유격수로서 20홈런 자체가 큰 영광이기도 하다. 이미 규정타석에 들어온 상황에서 타율도 2할9푼8리다. ‘유격수 3할-20홈런’은 꿈이 아닌데 생각보다 쉽게 안 나오는 기록이다. 즉, 나주환은 자신의 경력에 평생 남을 만한 타이틀에 도전하는 셈이다. 이왕 재기에 성공한 것,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는 것도 중요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