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버텨야죠."
모든 프로 선수가 그렇겠지만, 올 시즌 류지혁(23·두산)은 유독 어깨가 무거울 때가 많았다. 내야 모든 포지션 수비가 가능한 만큼,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뒤를 받쳤고, 지난 6월 말과 8월 초에는 주전 유격수인 김재호가 허리 부상으로 1군에서 이탈하자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순탄하지는 않았다. 수비가 장점으로 꼽혔지만, 류지혁은 전반기에만 9개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실책 숫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타격까지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더욱 플레이가 위축됐고,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하면서 류지혁은 한층 안정을 찾았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실책보다는 호수비가 더욱 돋보였고, 타격도 37경기에서 타율 2할9푼8리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다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허리 부상을 털고 연일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김재호가 지난 8월 29일 수비 도중 넘어져 어깨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다. 결국 김재호는 3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1군 등록 가능 기간은 말소 후 열흘이지만, 어깨 상태가 썩 좋지 않아 공백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일단 김태형 감독은 김재호의 공백에 대해서 "류지혁이 채울 것"이라며 주전 유격수 중책을 맡겼다.
무거워진 어깨. 류지혁은 "이제 약 20경기 정도 남았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그동안 류지혁은 김재호가 1군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욱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4일까지 김재호가 1군 엔트리에 없는 동안 치른 13경기에서 류지혁은 타율 3할2푼7리 2홈런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또한 김재호가 부상으로 빠졌던 당일에도 동점포 포함 멀티히트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류지혁은 "아무래도 (김)재호 형이 없으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온 힘을 짜내서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재호 형이 오면 기댈 곳이 생기는 만큼 긴장이 살짝 풀린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그는 "재호 형이 경기에 나가지 못할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많이 격려를 해줘서 힘을 얻고 있다"라며 "빨리 낫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많은 책임감과 부담이 뒤따르는 자리지만 그 과정에서 류지혁은 점점 성장했다. 류지혁 자신도 "지난해에는 나가면 형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데 바빴다. 그런데 이제 먼저 이야기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라며 "예전보다는 흐름이 조금은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두산은 지난 31일 KIA전에서 패배하면서 1위 KIA와 3.5경기 차가 됐다. 조금은 멀어졌지만, 아직 남은 20경기가 넘게 남아 있는 만큼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류지혁은 "남은 경기 다른 생각하지 않고, 재호 형의 공백을 채우면서 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bellsto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