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밝았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후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이란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차전을 벌인다. 이후 우즈벡 원정길에 올라 5일 자정 최종전을 치른다.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가를 운명의 2연전이다. 한국은 3위 우즈벡에 승점 1 앞선 2위다. '선두' 이란은 이미 러시아행을 확정지었다. 한국과 우즈벡이 남은 직행 티켓 1장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다.
▲ 지피지기 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신태용 감독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의 명운이 걸린 이란전에 사활을 걸었다. 이란은 아시아 최강자다. FIFA 랭킹도 24위로 가장 높다.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서 무실점하며 일찌감치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신 감독은 이란의 최종예선 1~8차전을 코치들과 함께 면밀히 분석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이란의 장단점을 경험한 그는 누구보다 이란을 잘 알고 있다.
신 감독은 "이란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비 후역습이다. 케이로스 감독의 생각을 선수들이 잘 이행하고 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서 선수가 바뀌어도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 힘과 세트피스가 위협적"이라고 원론적인 답을 내놓으면서 말을 아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한국이 비밀리에 준비 중이라 신태용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서도 "신태용 감독이 예전에 맡았던 팀들을 분석하며 정보를 얻고 있다. 한국의 장단점은 웬만큼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손흥민과 황희찬은 선발일까
부상을 안고 있는 둘의 선발 출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대표팀에서 황희찬은 최전방, 손흥민은 좌측면 날개를 담당하고 있다. 황희찬은 무릎 부상 여파로 최근 소속팀서 2경기 연속 결장했다. 올 시즌 11경기(컵대회 포함)서 7골을 몰아쳤을 정도로 득점감각이 물올랐다.
손흥민은 지난 6월 카타르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서 팔 골절상을 입어 올 여름 재활에 매진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포함해 2경기 연속 교체 출전한 그는 가장 최근인 지난 28일 번리전에 선발 출격해 70분을 소화하며 몸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둘의 선발 출격 여부는 오리무중이다. 신태용 감독은 전날 사전 기자회견서 "애매하다. 둘의 선발 여부는 경기장에 와야 알게 될 것"이라며 "이란이 신태용호라는 팀을 처음 접하게 되기 때문에 언론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우리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말로 여지를 남겼다.
황희찬과 손흥민이 선발로 출전하면 잦은 위치 변화로 템포가 빨라질 전망이다. 둘은 대표팀뿐 아니라 2016 리우 올림픽서도 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어 찰떡호흡을 기대케 한다.
반면 둘 대신에 이동국(김신욱)과 염기훈(이근호) 등이 최전방과 좌측면 날개로 낙점을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통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등을 지고 연계하는 플레이와 큰 키를 활용한 크로스 플레이가 주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 신태용과 케이로스, 누가 더 여우일까
여우 감독의 지략 대결도 볼만하다. 신태용 감독은 이란전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정보를 꼭꼭 숨겼다. 초반 15분만 훈련을 공개하며 철통보안을 유지했다. 선발 라인업과 포메이션을 비롯해 모든 정보를 경기장에서 확인하라고 할 정도로 제대로 장막을 쳤다.
신 감독은 "이란이 신태용호를 처음 접하게 되기 때문에 언론에서 공개하지 않으면 우리 팀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내 성격상 다 말씀드리고 공유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 이번 만큼은 한 마음 한 뜻이 돼 줬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을 정도다.
케이로스 감독은 7년 가까이 이란 대표팀을 이끌면서 아시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교훈 삼았다. 선수비 후역습 전술이 골자인 건 그대로이지만, 뒤는 빈 틈이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고, 앞은 날카롭게 다듬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은 좋은 선수를 보유한 훌륭한 팀이고, 죽을 힘을 다해 뛸 이유가 있어 매우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우리도 무실점과 무패를 이어가기 위해 죽도록 뛰겠다"라고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dolyng@osen.co.kr
[사진] 파주=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