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즌 10승은 하고 와야 하지 않겠냐?”
어쩌면 SK의 퓨처스팀(2군)을 경험한 투수들, 그 중 어쨌든 1군이 주무대인 선수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사다. 제춘모 퓨처스팀 투수코치의 타박 아닌 타박이다. 선수들은 “뭔가 느슨해진 모습을 보일 때 항상 그 말씀을 하신다.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제 코치는 2003년 10승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한켠에는 “꼭 10승을 이뤄 당당하게 이야기하라”는 마음 따뜻한 응원도 녹아있다.
SK 언더핸드 박종훈(25)은 그런 제 코치의 타박을 가장 많이 들은 투수다. 10승을 하려면 특별한 운이 없는 이상 선발로 뛰어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SK의 젊은 선수 중 선발 로테이션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박종훈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희귀한 투구폼과 위력적인 공의 움직임을 가진 박종훈은 2015년 6승, 2016년 8승을 거두면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 코치가 말하는 ‘10승 투수’는 아니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일까. 박종훈의 올 시즌 목표는 단연 생애 첫 10승이었다. 제 코치에 대한 ‘반격’의 의미도 있었다. 박종훈은 승수를 더해갈수록 “10승을 이루면 방송 인터뷰 때 ‘제춘모, 보고 있나?’라는 말을 꼭 할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그리고 결국 그 10승을 이뤘다. 박종훈은 지난 27일 인천 한화전에서 6이닝 2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 고지를 밟았다.
박종훈은 지난해 한계에 부딪혔다. 8승을 거두긴 했지만 13번을 졌다. 평균자책점도 2015년(5.19)보다 더 오른 5.66이었다. 승수가 2승 늘어났을 뿐 사실상 크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성적이었다. 제구 이슈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그때 주위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때로는 엄하지만, 때로는 형님처럼 선수들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지는 제 코치도 그 중 하나였다.
박종훈도 농담 삼아 제 코치에게 “꼭 반격하겠다”고 다짐할 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제 코치의 현역 시절부터 받은 것이 많았다고 떠올린다. 지금의 긍정적인 성격을 만들어 준 인물로 제 코치를 손꼽을 정도다. 흔히 현장에서는 10승을 한 번 경험한 투수와 그렇지 않은 투수는 차이가 크다고 한다. 현역 시절 부상으로 전성기가 일찍 끝났던 제 코치도 첫 걸음을 뗀 박종훈이 이제는 꾸준한 10승 투수로 더 발전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제 제 코치를 만나면 당당히 “저 10승 투수입니다”라고 할 박종훈이다. 그런데 박종훈이 넘어야 할 산이 갑자기 또 생겼다. 제 코치는 박종훈의 10승이 임박하자 불연 듯 또 하나의 조건을 달았다. 바로 소위 ‘K1’이다. 제 코치는 “박종훈의 능력으로 10승은 너무 약하다. 난 그해(200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승을 했다. K1도 달성해야 그때 나와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발뺌(?)을 했다.
제 코치의 당시 한국시리즈 1승(2차전 vs 현대)은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승리이기도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박종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이처럼 ‘10승+K1’이 이뤄질 때까지 양자의 옥신각신은 계속되겠지만, 제 코치는 박종훈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박종훈도 이제 그 목표를 위해 다시 뛸 것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