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의 비결이요? 요즘 저희가 '두산다운 야구'를 하고 있잖아요".
김재호는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전에 1번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출장했다. 김재호는 4타수 2안타 4타점으로 팀의 5-4 승리에 앞장섰다. 최근 4경기 중 3경기에서 '리드오프'로 나선 김재호는 낯선 옷임에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후 만난 김재호는 "중요한 경기 승리할 수 있었다"라며 먼저 말을 건네왔다. "마지막으로 4타점 경기를 한 게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원체 자주 했다"라고 답하는 여유도 선보였다. 이어 김재호는 "사실 올 시즌에는 출장 기회가 적었다. 이렇게 한 경기에서 활약한 게 오랜만이라 기분 좋다"라고 덧붙였다.
김재호는 평소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한 발 물러난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김재호는 "타격감이 좋은 때다. 그래서 지금 상위타선에 배치된 게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다. 김재호 본인도 리드오프 자리에 배치되며 찬스가 부쩍 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 김재호의 좋은 타격감이 만나니 결과가 좋은 건 당연했다.
그는 1군 주전으로 도약한 2008년부터 이날까지 1071경기서 2935타석을 소화했다. 이 중 9번 타순에 들어선 건 1932타석. 65%를 넘는 비율이었다.그 다음은 8번타순(524타석), 7번타순(191타석)이 순서를 이뤘다. 주로 하위타선이 어울리는 선수였다. 물론 김재호가 맡았던 두산의 9번타순은 전형적인 의미와 다소 달랐다. 그가 9번 타순에 배치됐던 건 단순히 타격 능력이 가장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었다. 9번부터 테이블세터가 시작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올 시즌 두산은 민병헌과 박건우, 최주환 등이 번갈아가며 리드오프 역할을 해냈다. 모두 어느 정도 역할을 해냈지만 기회는 김재호에게까지 돌아갔다. 김재호는 "내가 1번 타순에 나서는 건 기존 리드오프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감 좋은 선수가 차례로 번갈아가며 1번타순에 들어선다고 보면 된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건 타순이 아니라 경기 출장 자체다"라고 겸손함을 드러냈다.
연일 리드오프로서 활약하는 김재호이지만 김태형 두산 감독은 섣불리 그를 고정할 수 없었다. 체력 부담이 심한 유격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재호는 "솔직히 허리 부상으로 1군 말소되며 원체 많이 쉬었다. 체력이 남는 상황이다. 감 좋을 때까지는 1번타순에서 뛰는 것도 괜찮다. 감독님의 판단에 전적으로 따를 뿐이다"라고 단호히 밝혔다.
이날 경기는 '잠실 라이벌'간 혈투답게 2만5천석이 매진됐다. 올 시즌 KBO리그 45번째, 두산의 6번째 매진이었다. 이 소식을 건네들은 김재호는 "경기 중반쯤 관중석을 보고 '와! 많이 오셨다'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매진인 것까지는 몰랐다. 그 기가 전달되어 승리한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는 최근 부쩍 관중이 늘어났음을 느낀다고 한다. 김재호는 "시즌 초 경기력이 워낙 안 좋았다. '조용할 날 없는' 야구였던 것 같다. 원래 가진 기량을 못 보여드렸으니 팬분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게 당연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점차 두산다운 야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팬분들이 찾아주신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두산다운 야구. 김재호는 물론 양의지, 민병헌 등 중고참 이상의 선수들이라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이야기다. 김재호가 생각하는 두산다운 야구는 무엇일까. 그는 "다른 거 없다. 상대가 우리를 만나기 꺼려하는, 두려워하는 야구다. 반대로 우리는 팬분들과 함께 즐기는 야구다"라고 운을 뗐다.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에게 그는 "허슬 두, 후반에 강한 팀, 역전의 명수. 쉽게 지지 않는 팀. 지더라도 재밌는 경기하는 팀" 등을 쉴새 없이 언급했다. "좋은 게 다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하자 "그게 두산다운 야구다"라고 답했다.
캡틴 완장을 내려놨다고 해서 책임감이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다. 김재호는 여전히 팀의 척추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