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브이아이피', '신세계'와 또 다른 新느와르(ft.박훈정)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7.08.24 14: 00

 느와르의 신세계를 열었던 영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이 신작 ‘VIP(브이아이피)’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박훈정 감독표 느와르’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용한 장치인데, 그의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믿음을 주고 결국 표를 사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종의 파워를 지녔다.
‘브이아이피’를 ‘신세계’와 같은 느낌의 느와르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전작이 서열화된 조폭 세계에서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 갈등을 그렸다면 ‘브이아이피’에서는 훈훈한 브로맨스보다 수컷 냄새 가득한 남자들의 배신과 갈등, 경쟁의 색채가 더 강하다. 자기복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성공작을 만들수도 있었겠으나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과감하게 탈피한 변신을 시도했다.
‘브이아이피’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권력 세습과 1인자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던 지난 2013년 12월을 전후로 배경을 잡고 남-북한, 그리고 미국 CIA의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V.I.P 김광일(이종석 분)은 장성택의 오른팔이자 평안도 당 서기를 맡은 가상인물 김모술의 아들로, 소위 북한의 로열패밀리이다. 싸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그는 아버지의 ‘빽’을 믿고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여기는 연쇄 살인마이다.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지녀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혀 본적 없는 인물인 데다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다.
김광일은 늘 남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데뷔 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배우 이종석이 김광일 캐릭터를 제대로 분석해 맛깔나게 살렸다. 평소 애교 많기로 소문난 그가 달달한 로맨스물에 주로 출연했었지만, 이번에는 작정하고 캐릭터 변신을 하려는 듯 상상할 수 없었던 이미지를 보여줬다. 흥행에 성공한다면 이미지 변신을 도운 박 감독을 업고 다녀야할 판이다.
광일이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도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국정원과 美 CIA의 필요에 의해 남한에 입국한 기획 귀순자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김광일을 체포할 증거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만이 알고 있는 평양의 계좌 정보를 중요히 여기는 각 기관 직원들의 업무 처리 방식은 공분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위해 이런 상황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광일의 안하무인한 태도도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외교능력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브이아이피’는 필름 느와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명암 대비가 분명한 그로테스크한 영상과 짙은 담배 연기가그렇다. 무엇보다 경찰 채이도(김명민 분)와 북한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분),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분)의 모습에서 이 영화가 필름 느와르 성격을 띠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초반 CIA 요원 폴(피터 스토메어)과 재혁이 홍콩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장르의 안정성과 신뢰감을 보여준다.
또 다른 미학적 특징이 조명의 활용인데, 명확한 명담의 대비로 인물의 얼굴선을 강조했고 어두운 영화적 현실을 대변하기도 한다. 또 재혁과 대범 등의 주인공들이 대체로 무뚝뚝하고 과묵하게 그렸는데, 특히 인사고과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치여 사는 재혁은 우리 사회가 규정해버린 한국 남자의 대표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유형의 남자가 범인 잡기에 혈안된 이도와 대범, 미치광이 광일을 만나 점차 변화하는 모습은 느와르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남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의리 드라마의 성격을 이야기함으로써 더욱 더 단단하게 한국형 느와르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재혁, 이도, 대범, 광일 캐릭터가 막강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어 단 한 명의 배우에게만 분량이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나눠가졌다는 점에서 감독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각에서는 연쇄살인마 광일이 여성을 죽이는 장면이 매우 잔인하다면서 영화 자체를 평가 절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이야기 방식의 영화가 여전히 주류 영화로 인정받는 현 시대에서 이처럼 변형된 느와르는 더욱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신세계’ 같은 형식의 느와르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앞으로 또 다른 느와르의 세계를 개척할 박훈정 감독의 스타일에 기대감이 높다./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이미지 제공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