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레인지로버 벨라’, ‘스포츠’의 실용성과 ‘이보크’의 아름다움 사이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7.08.24 09: 39

 일반적이라면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차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레인지로버가 스포츠유틸리티비클(SUV)이기 때문이다. 크기는 부담스럽지만 오프로드에 강한 SUV의 본질을 강건하게 간직하고 있는 풀사이즈의 ‘레인지로버’가 1970년 런칭해 4세대까지 진화한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그 사이 대형 사이즈의 ‘레인지로버 스포츠’, 콤팩트 사이즈의 ‘레인지로버 이보크’도 출시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인공은 가장 늦게 나타난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중형 사이즈의 ‘레인지로버 벨라(Velar)’가 2017년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 된 뒤 지난 4월에는 서울모터쇼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우리나라에도 소개 됐다. 벨라라는 이름도 ‘감추다’ 또는 ‘장막’을 뜻하는 라틴어 ‘Velare’에서 따왔으니 가장 늦게 출시 되는 게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레인지로버 벨라’가 9월 국내 공식 출시를 앞두고 사전 계약을 받고 있으며, 하루 날을 잡아 국내 미디어 관계자들을 상대로 시승행사를 열었다.

국내에 들어오는 ‘벨라’는 크게 세 가지 엔진으로 나뉜다. 2.0리터 인제니움 4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장착한 D240, 3.0리터 V6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장착한 D300, 3.0리터 V6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을 단 P380이다. 각 엔진별 모델은 편의 사양에 따라 S, SE, HSE로 나뉘고 각 트림은 다시 R-다이내믹 유무로 구분 된다. 최상위 트림에는 ‘퍼스트 에디션 D300’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차의 가격은 무려 1억 4340만 원이다.
디젤과 가솔린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돼 기자는 ‘P380 R-Dynamic SE’를 골랐다. R-다이내믹이 적용 된 3,000cc 가솔린 모델의 SE급으로 가격은 1억 1610만원이다.
두 모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레인지로버 벨라’의 가격대는 매우 높다. 엔트리 트림인 ‘D240 S’가 9850만 원이고 디젤 모델 최상위 트림인 ‘D300 R-Dynamic HSE’는 1억 2620만원이다. 참고로 메르세데스-벤츠 GLE 클래스 350d 4Matic의 가격이 9690만 원이다. ‘D300 R-Dynamic HSE’과 ‘GLE 350d 4Matic’ 모두 3.0 디젤 엔진을 달았고, D300이 300마력을, GLE가 258마력을 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D300이 6.5초, GLE 쿠페가 7.1초다.
가격대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디자인은 매력적이었다. 대형인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콤팩트한 ‘레인지로버 이보크’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두 모델에 비해 가장 늦게 나왔기 때문에 디자인 완성도는 높았다. 스포츠의 실용성과 이보크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한 게 ‘레인지로버 벨라’였다.
애초부터 ‘벨라’에 적용 된 디자인 철학이 ‘간결하고 직관적인 아름다움’ 이었다고 한다. SUV는 세단에 비해 큰 덩치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이의 시선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에 간결한 디자인은 눈의 피로를 줄여주고, 세련미를 높여준다. 벨라는 그런 이론에 충실했고, 그 결과물은 뛰어난 조형미로 나타났다. 짧은 오버행의 앞쪽은 정갈하고 정제 된 느낌을, 측면에서 봤을 때 살짝 치솟은 버선코를 연상케 하는 후면부는 역동성과 자신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디자인은 ‘벨라’에 오프로드 보다는 온로드에 적합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랜드로버 개발 담담당자들도 벨라를 두고 ‘가장 역동적인 온로드 중심의 레인지로버’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레인지로버의 뿌리인 오프로드 성능을 버린 건 아니다. 전지형 주행능력을 갖추되 차체 바디 아래로 숨겨 뒀다. 대신 럭셔리한 외관과 다이내믹한 온로드 성능으로 도심을 주름잡겠다는 전략이다. 
시승 코스도 한강공원잠실지구를 출발해 영종도를 돌아오는 구간이었다. 철저하게 온로드 성능에 초점이 맞춰진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기자가 탄 ‘P380 R-Dynamic SE’는 최고 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45.9kg.m에 0km/h→100km/h 도달시간 5.7초를 자랑한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차량이 드문 인천공항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380마력의 V6 슈퍼차저 엔진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SUV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세단에서 느낄 수 있는 배기사운드가 엑셀을 밟는 운전자의 발끝에 맞춰 경쾌하게 울어 댔다.
속도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RPM은 레드존 가까이 치솟았다가 뚝 떨어지기를 반복했지만 8단 자동변속기의 변속 충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공인 연비는 도심 7.0km/l, 고속도로 9.1 km/l로 복합연비 7.8 km/l를 적어내고 있지만 웬만한 속도에서는 rpm이 1500을 넘지 않았다. 운전습관에 따라 공인연비보다 충분히 더 나올 수 있는 여력이 있어 보였다.
운전자가 가장 많이 접하는 계기반과 인포테인먼트 패널, 그리고 센터페시아에는 최첨단 IT 기술이 접목 됐다. 운전자는 언뜻 3대의 태블릿 PC를 접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센터페시아 상단의 인포테인먼트 패널에는 내비게이션, 각종 미디어, 전화 통화의 기능이 들어가 있고, 하단의 센터페시아 패널에는 각종 공조장치와 주행 모드 설정, 서스펜션 높이 조절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들이 몰려 있다. 운전 중 조작이 많은 주행 모드 설정과 실내 온도 설정 기능은 별도의 다이얼을 둬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도 설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첨단 태블릿 PC를 연상케 하는 패널들이 보기만큼이나 실용적일 지는 의문이 들었다. 운전 중 조작버튼은 운전자의 시선을 빼앗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작동 될 수 있는 것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 터치스크린에 있는 정전식 스위치들이 물리 버튼에 비해 얼마나 정확성을 유지할 지는 의문이며, 터치스크린 위에 남는 수많은 손자국들은 깔끔한 성격의 운전자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줄지 염려가 됐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이보크 사이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던 이들에게 ‘벨라’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요건들을 두루 갖췄다. SUV의 본질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실용성이 충분할 것이고, 이보크의 디자인 언어를 본받았기 때문에 정제 된 아름다움도 갖췄다. 다만 유수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세계적 트렌드인 SUV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모델들을 내놓은 오늘날에도 레인지로버에 이끌리던 럭셔리 SUV 수요자들의 환호가 이어질 지는 두고 봐야겠다. /100c@osen.co.kr
[사진] 레인지로버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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