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고영표가 '버두치 리스트' 공포에 대처하는 자세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8.21 05: 44

젊은 투수의 이닝 관리를 강조는 '버두치 리스트'. 국내 선수들도 이를 차츰 인지하고 있다. 과연 그 당사자는 어떤 반응일까.
고영표는 20일 수원 kt위즈파크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전에 선발등판, 5⅓이닝 5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6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2-1로 앞선 6회 1사, 줄곧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졌다. 결국 경기 중단. 약 30분을 지켜봤으나 빗줄기는 통 가늘어지지 않았다. 경기는 그대로 kt의 강우콜드승으로 끝났다. 고영표는 완투승을 챙기게 됐다.
경기 후 만난 고영표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그는 "완투승이긴 하지만 6이닝을 채우기 전에 경기가 끝났다. 퀄리티스타트를 완성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고영표는 5월 19일 수원 넥센전에서 8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시즌 4패(4승)째를 떠안았다. 이때부터 12경기서 평균 1.83점을 지원받으며 승리 없이 8패, 평균자책점 6.21을 기록했다. 그러나 6일 수원 SK전서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5승째를 따낸 걸 기점으로 개인 3연승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영표는 8연패에 빠졌을 때도, 3연승을 달릴 때도 승리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선발투수에게 중요한 지표가 많다. 이닝은 당연하고 퀄리티스타트, 나아가 퀄리티스타트+ 등이 있다. 승은 그저 따라오는 거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고영표는 "승은 타선 지원에 불펜의 도움이 모두 따라와야 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태도는 팀의 '에이스' 라이언 피어밴드와 닮아있다. 피어밴드 역시 늘 "승은 투수가 조정할 수 없다. 그저 내 역할을 다했다면 승수 쌓기에 실패해도 괜찮다"라고 강조한다. 고영표는 올 시즌 '피어밴드바라기'를 자처하고 있다. 고영표는 "미국 야구는 우리보다 역사가 길다. 아무래도 야구 전반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투수로서 몸 관리나 타자 상대하는 법은 물론 비시즌 몸 만드는 것까지 전부 흡수하고 싶다"라며 밝게 웃었다.
승에 연연하지 않는 고영표가 올 시즌을 앞두고 내걸었던 목표는 퀄리티스타트 15회. 고영표는 현재까지 10차례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남은 등판에서 대부분의 경기를 퀄리티스타트로 마쳐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그는 "퀄리티스타트 15회는 여전히 내 목표다. 두 번째 목표였던 규정이닝 소화도 10⅓이닝 남았다. 남은 경기 많은 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을 낮추고 싶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닝을 강조하는 고영표.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근 '버두치 리스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골자는 '25세 이하의 어린 선수가 전년대비 30이닝 이상 던졌을 때 부상을 더 많이 당하거나 부진한다'는 내용. 지난해 불펜으로 등판하며 53경기서 56⅓이닝을 소화했던 고영표는 올 시즌 23경기에서 133⅔이닝을 던졌다. 버두치 리스트에 포함되는 조건이다. 김진욱 kt 감독 역시 "남은 시즌 고영표의 이닝을 관리해줄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영표도 버두치 리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신경 쓰인다. 올해만 야구하고 끝이 아니다. 자기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털어놨다. 팀 동료 주권만 봐도 그렇다. 주권은 지난해 28경기에서 134이닝을 던지며 6승8패, 평균자책점 5.10을 기록했다. 데뷔 첫 해 15경기서 24⅓이닝을 소화했을 때에 비해 100이닝 가까이 늘었다. 주권은 올 시즌 24경기에서 58⅓이닝을 던지며 2승5패, 평균자책점 8.02로 부진하다. 고영표는 "(주)권이의 몸 상태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한두 경기 부진했을 때 주위에서 2년차 징크스나 버두치 리스트 이야기가 나오며 심리적으로 쫓기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자신감이 나왔다. 고영표는 "버두치 리스트에 해당하는 모든 선수가 부진하거나 다치는 건 아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류현진 선배님만 봐도 그렇지 않나. 결국 본인이 어떻게 하냐에 달린 것 같다"라고 당찬 목소리를 냈다. 스스로가 흔들리지 않고 몸 관리에 주의한다면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버두치 리스트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일부 선수들의 표본일 뿐, 고영표의 말처럼 반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관리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서도 안 된다.
남은 시즌,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 고영표가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냐에 유달리 관심이 가는 이유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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