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동건의 복귀작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는 남한의 국정원과 미국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귀순 온 V.I.P 김광일(이종석 분)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가운데 이를 덮으려는 국정원과 체포하려는 경찰, 복수하려는 북한 요원 등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정원 직원 박재혁 역을 맡은 장동건은 외압에 신념을 굽히며 정의로움보다 생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면모를 강조했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간의 캐릭터와는 궤를 달리한다. 섬세한 변화로 디테일을 강조했기 때문에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장동건은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재혁이 업무 스트레스에 찌들고 중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제가 안경이 잘 안 어울리는데 안경만 50개가량 써보면서 변화를 줬다”고 캐릭터를 분석한 과정을 설명했다. 매번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거치는 장동건의 다양한 트레이닝 과정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와 리얼함을 더했다.
인터뷰 내내 대답이 느렸고 답변도 길지 않았지만 백 번쯤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어떤 결심처럼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이어 장동건은 “현장에서 촬영을 할 때마다 편집본을 보긴 했는데 완성본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멀티캐스팅이 아닌 작품에서는)제 모습이 예상이 되는데 여러 배우들이 있으니 어떻게 완성될까 싶었다”며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봤는데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만족스럽다”고 완성된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했다.
‘친구’ ‘태풍’ ‘워리어스 웨이’ ‘마이웨이’ ‘위험한 관계’ ‘우는 남자’ 등에서 터질 것 같은 폭발 직전의 상황, 점차 궁지에 몰리게는 캐릭터의 심리적 압박감을 리얼하게 소화해낸 장동건은 ‘브이아이피’에서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나름의 해석력으로 박재혁이라는 인물을 입체감 있게 구현해냈다.
“작품이 안 되고 잘되는 것을 떠나 저는 새로움을 갈구했다. 한 3~4년간 매너리즘에 빠졌었다. 배우는 나르시시즘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저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내 매력 못 느꼈고 외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없었다. 뭘 해도 흥이 안 났다.”
장동건은 추창민 감독의 영화 ‘7년의 밤’을 촬영하면서 극복했다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예전의 기분을 되찾았다. ‘7년의 밤’은 잘 안 되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덜어내는 시간을 겪고 나니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 영화의 개봉은 미정이다.
장동건은 ‘브이아이피’에서 힘을 빼고 편안하게 연기했어도 여전히 잘생김이 묻어있다. 이날도 외모에 대한 얘기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는데 장동건은 “외모에 대한 질문을 늘 받아왔다. 질문하시는 분도 진짜 내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다”며 “잘생긴 외모 인정은 옛날부터 하고 있었다(웃음). 과거에 비해 좀 더 편안해졌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멋진 것 같다”고 말했다.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25년 동안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고 올바른 길로 정주행한 장동건은 여전히 모범 남편이자, 모범 아빠였다. 그가 “아이들과 키즈 카페에도 가고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밤 12시 이전에는 귀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장동건은 예능 출연 계획이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실 예능 프로그램은 자신이 없다”면서 “이번에 한 번 예능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라고 답하며 성격 좋게 웃어넘겼다.
이달 23일 개봉하는 ‘브이아이피’에는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등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앙상블을 그려온 이야기꾼 박훈정 감독의 솜씨를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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