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제대로 된 B급 감성극이 탄생했다. '맨홀'이 거침없이 망가지는 배우들의 열연과 극 전반에 깔린 코믹함과 엽기적인 코드가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지난 9일 첫 방송된 KBS 2TV 새 수목드라마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은 3년차 공시생 봉필이 28년 동안 짝사랑한 수진(유이 분)의 결혼을 막기 위해 맨홀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타임슬립과 코믹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동시간대 SBS '다시 만난 세계'와 MBC '죽어야 사는 남자'와의 유사성에 대한 우려가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 생겨먹은대로 열심히 하는 거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던 박만영PD의 말처럼 베일을 벗은 '맨홀'은 두 드라마와 확실한 차별점이 있었다. 무언가 있어보이려고 한다거나 영상미를 보여주려고 하는 대신, '똘기' 넘치고 다소 찌질하기도 한 주인공의 성격에 맞는 코믹한 전개가 제대로 통한 것.
특히 '맨홀'은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장르를 택한 만큼 그간 이를 택했던 다른 드라마들과 어떻게 다르게 그릴지 궁금증이 향했는데, 서울을 찾은 외계인의 분노를 산 봉필이 이로인해 맨홀에 빠지는 다소 허를 찌르는 연출로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워터파크에서 워터슬라이를 탄 듯 빨려들어간 CG와 봉필을 삼킨 후 트림을 하는 맨홀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러한 '맨홀'을 이끄는 캐릭터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봉필은 오프닝부터 만취해 등장, 수진의 집에 들어온 함잡이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수진의 결혼을 막는 방법을 물어보는 엉뚱함부터 수진에게 고백하려는 순간 "오줌 마렵다"며 자리를 피하는 찌질함까지, '웃픔(웃긴데 슬픔)'의 정석이었다.
이날 방송 말미에는 맨홀에 빨려들어가 과거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봉필의 모습이 그려지며 한층 더 버라이어티한 전개가 예고됐다. 2회부터 첫 회 그 이상의 웃음과 재미를 안길 것으로도 기대되는 바. 이처럼 제대로 된 B급 감성을 장착하고 나타난 '맨홀'은 과연 호평에 힘입어 흥행을 기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맨홀' 방송화면 캡처.